18일 한은·금감원 '기후금융 콘퍼런스'
2024~2100년 무대응 시 손실 45조7000억
14개 금융사 신용·시장·보험손실 추정 결과
"기후 리스크로 인한 금융기관 손실 규모는 최대 45조7000억원에 달할 것이다. 기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은행은 신용손실에 대해, 보험사는 시장손실과 풍수해 관련 보험손실에 대해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18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개최한 기후금융 콘퍼런스에서 "향후 기후 리스크가 국내 금융기관 건전성과 금융안정을 훼손하는 핵심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업종별로 보면 기후대응 정책 시행 시에는 철강 등 고탄소 제조업에 대해, 무대응 시에는 식료품·건설업 등 기후 취약 업종에 대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기후 시나리오 소개 및 한국은행 하향식 테스트 결과' 발표를 통해 기후 리스크가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1.5℃ 대응 경로가 가장 작고, 무대응 경로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했다. 2024~2100년 중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1.5℃ 대응(2050년 탄소중립 달성) ▲2℃ 대응(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현재 대비 80% 감축) ▲지연 대응(2030년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탄소중립 정책 추진) ▲무대응(기후정책 미도입) 등 네 가지 시나리오로 설정하고, 경로별 실물경제 파급 영향을 분석한 결과다.
한은은 기후 리스크로 인한 금융기관 손실 규모는 무대응 시 분석 기간 누적 45조7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연 대응 시엔 39조9000억원, 2℃ 대응 시엔 27조3000억원, 1.5℃ 대응 시엔 26조9000억원 순이었다. 1.5℃ 대응의 경우 손실 규모가 2050년께 최고점을 지나 감소하는 반면, 무대응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TF에 참여한 14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추정한 신용·시장·보험손실이다. 이 경우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5.3%포인트에서 7.6%포인트까지 하락 가능하며, 보험 지급여력비율(K-ICS)은 13.6%포인트에서 26.1%포인트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금감원이 기업 여신 규모 1조원 이상 36개 금융사에 대해 신용 리스크를 중심으로 실시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역시 궤를 같이했다. 금감원은 무대응 시나리오 하에서 2100년 기준 신용손실이 25조1000억원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1.5℃ 대응 시엔 19조5000억원으로 줄어든다. 금감원은 "은행권 총자본비율은 무대응 시 3.8%포인트, 탄소중립 시 3.1%포인트 하락 가능하며, 보험권 K-ICS비율은 각각 2.9%포인트, 1.8%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은행 총자본비율은 다른 시나리오에선 최소자본규제 비율을 충족하나, 무대응 시나리오에선 7개 은행이 2100년 기준 비율을 밑돌 것이라고 분석했다. 총자본비율 규제 수준은 11.5%다. 단 금융체계상 중요한 은행·은행지주회사(D-SIB)인 국민, 신한, 하나, 농협, 우리는 12.5%다.
신용손실 발생은 70% 이상이 철강 등 고탄소 배출 제조업 및 도소매업 등 자연재해 손실 민감 업종에서 발생할 것으로 관측했다. 지방 소재 금융사의 손실률(2.0%)이 시중은행(1.3%)을 웃돌며, 고탄소 배출 산업이 밀집한 지방일수록 선제적 기후리스크 관리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한편 한은은 이날 국내은행·보험사 총 62개사를 대상으로 기후 리스크 관리 현황을 설문한 결과, 대형 금융기관(21개사, 34%)을 중심으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리스크 평가 체계를 구축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대부분 기관이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방법론 개발에 집중했다며,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활용한 실질적인 기후 리스크 감축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사는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과정에서 장기 시계 분석에 따른 불확실성과 관련 데이터 부족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책당국이 공통 기후 시나리오 및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주기를 희망했다. 한은은 "지난해 한은·금감원·기상청이 구축한 공통 기후 시나리오를 지속 개선하고, 해당 시나리오를 금융사에 제공해 금융권 기후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향후 기후리스크 감독 방향으로 저탄소 전환 자금의 원활한 공급 지원, 지자체·지방 소재 금융사와 협력 강화, 전사적 기후리스크 관리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콘퍼런스 이후에도 기후리스크 관리를 위한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 간 협력을 지속하고, 다양한 국내외 전문가 집단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고탄소 배출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경제 구조에 맞춰 금융권의 저탄소 전환 자금 공급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등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 공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탄력적 기후리스크 감독 방향을 제시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날 이복현 금감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등으로 국제적 기후 위기 대응 공조가 약화하는 움직임도 있으나 미래를 위해 적극적 기후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탄소 감축이 장기 경제성장과 금융안정에 이익이므로 긴 안목의 대응이 필요하다"며 "특히 고탄소 배출 산업이 밀집한 지방에 경제적 영향이 크므로 지자체 및 지방 소재 금융사는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기후리스크 감독방안으로는 저탄소 전환금융 활성화와 녹색 여신 관련 인센티브 부여,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협력 강화, 전사적 기후리스크 관리시스템 도입 유도 등을 제시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축사에서 "기후 위기에도 실물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 및 금융권, 한은과 지속해서 논의와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기후위험 영향 분석모델'을 확대 개발·제공하고, '기후 위기 적응정보 통합플랫폼'을 구축해 금융권이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기후 위기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환영사에서 기후 리스크가 폭염·극한 호우로 인한 물적 피해와 함께, 탄소 감축 과정에서 기업 생산비 증가와 자산가치 하락 등을 통해 금융 시스템에 파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융기관이 물리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위험 관리자로서, 전환 리스크에 대해서는 녹색 전환자금을 공급하는 위험 수용자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기후 리스크가 금융안정을 훼손시킬 수 있는 핵심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콘퍼런스가 한국 경제 전반의 구조 전환 노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