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제주 해녀 이야기
금능리 해녀들의 고단한 삶 '출향물질'
사라져가는 해녀…2023년 2839명
해녀들의 삶과 전통, 기록해야 할 역사
서양의 인어가 바닷속 환상과 신비의 존재라면, 동양의 해녀는 바다와 공존하며 삶을 개척해 온 현실 속의 강인한 존재다. 서양 인어가 전설과 신화 속에 머문 공주라면, 동양의 해녀는 바닷속 깊이 들어가 현실의 생계를 이어가는 삶의 역사를 써왔다. 즉, 서양이 바다를 꿈꾸고 상상했다면, 동양은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 온 셈이다.
그래서 인어는 먼 바다의 신비로운 공주였고, 해녀는 곁에서 묵묵히 가족을 먹여 살린 엄마이자 딸, 그리고 할머니였다. 해녀의 삶은 늘 현실이었고, 바다는 생존의 터전이었다. 그녀들은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거친 물살과 싸우며 가족을 지켜낸 우리네 일상이자 진짜 이야기였다.
금능해변에서 만난 아기해녀와 '2839'
따사로운 햇볕 아래, 아직은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제주 금능해변. 어촌계장 홍준희(65) 씨와 막내 해녀인 최지은(36) 씨를 만나 작은 테왁(부력을 이용해 해녀들이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기구) 키링을 만들며 '바당 물질'하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 씨는 마을에서 '아기해녀'라고 불린다. 예전에는 물질을 배우기 시작한 최하급 해녀를 '똥군'이라 불렀지만, 요즘은 그 대신 '아기해녀'라는 더 정감 있는 이름을 사용한다.
잠수복을 입으면 다 똑같아 보이는 해녀들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가 존재한다.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지역에 따라 최상급인 대상군이나 이제 막 물질을 배우기 시작한 최하급인 똥군으로 구분된다. 이 위계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폐활량과 같은 선천적인 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중군에서 상군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금능리 어촌계에서는 이런 위계를 존중하면서도 대를 이어 해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제주도 통계에 따르면 제주 해녀 수는 2839명. 1970년에는 1만4143명이나 되었지만, 2023년 활동한 제주 해녀의 90.3%(2565명)는 60세 이상이다. 50대가 6.1%(175명), 40대가 2.3%(66명), 30대는 0.9%(27명), 20대는 0.2%(6명)에 그쳤다. 이는 해녀 문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바다와 함께한 고단한 삶, 생계 지탱해준 출향물질
"제일 처음 입었던 물옷이 있어요. 그땐 고무옷을 입을 줄 몰라서 먼저 물질을 했던 정자 언니가 제 고무옷을 입혀 줬죠. 당시엔 고무옷을 수월하게 입으려 고무옷 안에 물옷을 입었는데, 지금은 너무 낡아 입을 수 없는데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간직하고 있어요."
홍준희 어촌계장의 이 말은 해녀 삶에 대한 추억과 애착을 담고 있다. 이날 진행된 금능리 해녀체험 강의 자료를 살펴보니 81세 홍준자 해녀는 13세부터 물질을 시작했고, 17세에 출향물질(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 바다에서 하는 물질)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해녀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74세 양옥열 해녀도 비슷한 시기에 해녀 생활을 시작했다.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죠. 밭에서는 보리나 조 등 집에서 먹을 농작물 정도만 수확했고, 팔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돈이 나는 것은 전부 바다 수확물 뿐이었어요. 소라, 미역 등을 잡아 생활을 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극 중 해녀로 등장한 애순의 엄마 전광례(염혜란 분)는 빚만 남긴 부모, 병 수발 들다 보낸 첫 남편, 한량 새 남편 까지 물질로 부양하며 삶을 이고 지고 사는 억척인생이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위하는 딸 애순이 애틋해 더욱 물질에 매진하는 인물로 묘사됐다. [사진 = 넷플릭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31621230169711_1742127781.jpg)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극 중 해녀로 등장한 애순의 엄마 전광례(염혜란 분)는 빚만 남긴 부모, 병 수발 들다 보낸 첫 남편, 한량 새 남편 까지 물질로 부양하며 삶을 이고 지고 사는 억척인생이지만, 유일하게 자신을 위하는 딸 애순이 애틋해 더욱 물질에 매진하는 인물로 묘사됐다. [사진 = 넷플릭스]
원본보기 아이콘홍준자 해녀는 바다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고 회상했다. 특히, 그 시절 아이들도 보통 12~13세가 되면 물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수입은 동생들 교육비나 결혼자금으로 사용되곤 했다. 당시 해녀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질은 제주 해녀들의 삶 그 자체였지만, 제주 바다만으로는 충분한 수입을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해녀들이 '출향물질'에 나섰다.
"육지 나가서 쌀 살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직접 지은 보리쌀을 자루에 담아 조그만 배를 타고 포항 구룡포까지 갔어요. 그곳에서 각자 물질하는 곳으로 이동해서 생활을 했죠."
과거 포항으로 떠날 때 홍준자 해녀의 이야기처럼, 출향물질은 단순히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낯선 바다, 현지인들의 무시와 천대 속에서도 제주 해녀는 가족을 위해 꿋꿋이 물질을 계속했다.
"출향물질을 가면, 얼마나 못 살면 이곳까지 물질을 왔냐며, 그곳 현지인들한테 참 많은 천대를 받기도 했어요."
타지에서 겪은 해녀들의 설움을 담은 김은선 해녀의 회상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이들은 눈물 흘릴 새 없이 구룡포, 여수, 보성, 완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물질을 이어갔다. 17세부터 40세까지 출향물질을 다녔다는 홍준자 해녀의 이야기는 그 시절 해녀들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위험과 공포를 넘어선 용기, 숨비소리
해녀는 작업 특성상 최대 7시간 정도 바다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감압병, 이명, 저체온증 등과 같은 병을 경험하는 극한 직업이다. '뇌선'이라는 약을 달고 사는 것이 제주 해녀의 운명이었다. 오죽하면 해녀들이 바다 위로 올라와 내쉬는 숨비소리를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 표현할까? '소로 태어나지 못하여 여자로 태어났다'는 속담이 제주에서 전해질 정도로 해녀의 물질 작업은 고된 노동이었다.
숨비소리는 제주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꾹 참았던 숨을 물 위로 올라와 내쉬며 '호오이 호오이'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 소리는 누군가에게 마치 돌고래나 새가 우는 듯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삶을 위한 해녀의 울부짖음과 같다. 거친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면 간혹 숨조차 쉬기 힘든 극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데, 그때 가까스로 숨을 쉬며 내뱉는 소리가 바로 숨비소리다. 이는 그들의 목숨이 달린 아름답지만 슬픈 소리로, 가족을 위해서 고생을 마다않는 엄마의 헌신적 사랑을 의미한다.
"공포감이 있다면 물질하기가 힘들죠.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살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서 바다와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홍 계장의 말처럼, 그들은 바다의 위험을 알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왔다. 해녀는 한번 잠수에 통상 1∼2분 바닷속에서 소라·전복·천초(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한다. 상군 중 일부 해녀는 한 번에 3분가량 20m 깊이까지 들어가 작업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7시간가량 짧게는 수십 차례, 길게는 100여 차례 물속을 드나들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물질의 특성상 숨을 끝까지 참아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2011년, 한 의류 브랜드가 제작한 영상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과 제주 해녀 할머니의 숨 참기 대결이 화제가 됐다. 나란히 물속에 들어간 두 사람은 수영장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견제의 시선을 주고받기도 하고, '인제 그만 먼저 올라가라'며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기도 했다. 3분 남짓 시간이 흘렀을까, 박태환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 위로 올라가 승부는 해녀 할머니의 승리로 끝났다. 해녀 할머니는 승부가 난 뒤에도 물속에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장난스러운 대결은 해녀들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의 삶이 얼마나 극한의 환경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해준다.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삶'과 단 한 번에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대결'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는 해녀
금능어촌계에는 현재 69명의 해녀가 활동하고 있다. 최고령 해녀는 84세 양선자 삼춘이고, 가장 어린 해녀는 37세 최지은이다.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해녀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의 해녀들은 과거와 달리 자신의 선택으로 해녀가 됐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바다를 놀이터 삼아 성장했고, 해녀 문화에 매력을 느껴 스스로 해녀가 된 경우가 많다.
"태어나보니 엄마가 물질하고 계셨어요. 바닷가 마을에 살다 보니, 바다는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였고요. 자연스럽게 물질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 어떤 누구의 개입이 있었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아주 자연스러운 혹은 당연한 과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학연구센터에서 2017년 발간한 '제주해녀의 얼굴'에 수록된 제주 금능리 어촌계 소속 해녀들의 단체사진. 당시 활동 하던 61명의 해녀들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 = 제주학연구센터]](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31621411969720_1742128903.jpg)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학연구센터에서 2017년 발간한 '제주해녀의 얼굴'에 수록된 제주 금능리 어촌계 소속 해녀들의 단체사진. 당시 활동 하던 61명의 해녀들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 = 제주학연구센터]
원본보기 아이콘손화진 해녀의 고백은 현대 해녀들의 선택적 계승을 보여준다. 더 이상 경제적 필요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 아닌, 문화적 가치와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해녀 문화의 새로운 모습이다.
해녀 문화의 지속을 위해 중요한 것은 선배 해녀들의 지식과 경험을 후대에 전하는 일이다. 바다 속의 '여'(바다 속 동산)에 대한 지식은 은퇴한 해녀들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금능해녀회와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에서는 이러한 소중한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바다 속 지도를 제작 중이다.
"여 이름은 대체적으로 모양, 특징, 위치 같은 것으로 대부분 지어지는 것 같아요. '산방난 여', '낭깨는 여', '문돈 여' 같은 이름이 있죠. '박정화 여'처럼 특정 해녀가 잘 찾아가거나 잘 작업하는 장소도 있죠"
홍 어촌계장의 설명처럼, 바다 속 지형에 대한 상세한 지식은 해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지식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보존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해녀 문화는 민요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고된 작업은 제주 해녀들이 부르는 민요에도 드러난다. 제주 해녀들이 부르는 민요는 제주방언의 보고라고 할 정도다. 과거 돛배를 타고 뱃물질하러 오갈 때 노를 저으며 불렀던 노동요로, 1939년 임화의 ‘조선민요선’에 다음과 같은 해녀가가 실려 있다.
해녀가
양석 싸라 섬에 가게
명주바당에 쓸바름 불나
앞강에 뜬 배는 낙소장배
뒷강에 뜬 배는 님실은 배요
눈물은 지면 한강수 되고
한숨은 쉬면은 동남풍 되고
노래는 부르면 치를 잡고
이여사나이여사나 전복 좋은년 뜽으로
미역좋은 농댁으로
갑태좋은 작지왓으로
얼금설금 폐았드로
설금설금 니러가니
홍합대합 빗죽백죽
캐여서장 맛을 보니
일천간장이 사르르한다
이 민요에는 해녀의 삶과 바다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들이 겪는 고난이 담겨 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해녀들의 믿음이고 그들 삶의 일부였다.
오늘날 해녀들은 과거와 다른 자부심을 품고 산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해녀 문화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해녀들은 단순한 생계형 직업이 아닌 문화유산의 계승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해녀문화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내가 그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현대 해녀들은 문화적 가치와 전통의 계승자로서 의미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감소, 고령화, 판로 문제 등 해녀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현실적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제주 해녀들의 삶과 이야기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생생한 역사이자, 여성들의 강인한 생존력과 지혜가 담긴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또한 제주 해녀들의 삶은 그 자체로 깊은 문학적 영감을 주어 많은 작가들에게 풍부한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문학이 된다. 지난 6~8일까지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예향의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서귀포의 역사와 문화를 전국 문학지에 싣고' 행사는 이러한 제주의 문화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원본보기 아이콘문학으로 이어지는 해녀의 이야기
서양의 인어가 환상이라면, 제주의 해녀는 현실이다.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민속이나 관광 상품이 아닌, 생존과 공존의 역사이자 여성의 강인함과 지혜가 담긴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해녀들의 삶과 이야기는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많은 작가들의 펜을 움직이게 한다.
지난 6~8일까지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예향의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서귀포의 역사와 문화를 전국 문학지에 싣고' 행사는 이러한 제주의 문화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서귀포문인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한국시인협회, 에세이문학작가회, (사)한국문인협회 회원들과 여수, 대전, 전주, 무주 등 전국 각지 문인협회 소속 작가들이 참가했다. 행사는 제주국제자유도시(JDC)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제주의 풍광과 역사, 그리고 해녀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창작의 영감을 얻은 이들은 앞으로 각자의 문학지를 통해 제주의 이야기를 전국에 알릴 예정이다. 2차 프로그램은 오는 4월에 진행될 계획이다.
정영자 서귀포문인협회 회장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렀고, 현재도 몇몇 문인들이 서귀포에서 창작의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며 "많은 육지 예술가들을 사로잡았던 제주의 자연과 오름, 해녀 문화를 비롯한 서귀포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마주하며,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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