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사우디 리야드서 장관급 회담
트럼프·푸틴, 종전 논의 개시 합의 6일만
고위급 협상팀 구성·전후 우크라 재건 등 논의
대러 제재 해제 논의도…美, EU에 양보 요구
젤렌스키 "초대받지 못해…협상 배제 안돼"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고위급 협상팀을 구성하고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對)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하며 유럽연합(EU) 측에 '양보'도 요구했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패싱'하면서 미·러가 종전 협상과 대러 제재 완화,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급 협상을 개최했다.
미국 측에서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독 특사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과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4시간30분간의 회담을 마친 루비오 장관은 양국이 외교 공관 운영을 정상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분쟁이 종식되면 지정학적·경제적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논의, 생각, 검토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와 유럽 패싱 논란을 의식한 듯 "우크라이나, 유럽의 파트너 및 기타 국가들의 참여와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향후 종전 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회담이 "매우 유용했다"며 "미국 측이 우리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부과된 제재 해제와 관련한 논의도 이뤄졌다. 루비오 장관은 대러 제재 해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 분쟁의 결과로 제재가 부과됐다"며 "갈등을 끝내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 양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U 회원국들이 수많은 대러 제재를 부과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호혜적인 경제 협력 발전을 막는 인위적 장벽 제거에 대한 강한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양측의 고위급 접촉은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2일 통화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논의를 즉시 개시하기로 합의한 지 불과 6일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주요 당사국을 패싱한 미·러의 종전 협상에 강하게 반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튀르키예를 방문해 "우리는 사우디에서 열리는 미·러 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며 "우리에겐 놀라운 일이었고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협상이 "주요 주체들의 등 뒤에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떤 결정도 "우크라이나에 강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군 확보를 위해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 계획도 취소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겨냥할 수 있는 추가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혀 제재를 시사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도 이날 현지 매체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강력한 카드를 내주는 건 현명하지 않다"며 제재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란 점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 12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러시아가 강제 병합 또는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반환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평화유지군 우크라이나 주둔과 함께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요구해 온 종전 협상 조건이었다. 헤그세스 장관은 우크라이나 내 미군 파병이 없을 것이란 점도 확인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회담은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 "수십 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파괴적인 갈등을 처리하는 워싱턴의 전환점인 동시에 신속한 평화를 강요하려는 결심으로 동맹국을 우회하는 미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전했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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