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예외' 무산…국가적 지원 요원
양향자 "정치권 몰이해로 산업 경쟁력 약화"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산된 뒤 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인 양 전 의원은 정치권이 또다시 산업의 현실을 외면했다며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어조로 강하게 비판했다. 세계 반도체 강국들이 연구개발(R&D) 인력에 유연한 근로 환경을 제공하는 사이 한국은 경직된 규제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정치권이 반도체 연구개발을 단순 노동으로 착각하고 있다면서 재차 분통을 터뜨렸다. 세계 반도체 강국들은 연구개발 인력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만·일본 가릴 것 없이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일을 많이 시키는 대신 통 크게 보상한다. 하지만 한국은 인재 유치를 희망하면서도 많이 일하지 말라고 한다. 양 전 의원은 "이런 시대착오적 관념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바이오·우주산업 등 미래 성장 산업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봤다.
양 전 의원은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누구보다 반도체 현장을 잘 아는 인물로 통했다.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여성 임원으로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서 경험을 쌓았다. 삼성전자에서 30년 가까이 반도체 기술 개발을 담당하며 반도체 공정 및 생산의 핵심 전문가로 성장했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밤낮없이 연구했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앞서가기 위해 유연한 근로환경과 강력한 정책 지원이 필수라는 점을 직접 경험했다. 정치에 입문한 뒤 그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조하며 'K칩스법' 등 대안을 제시하는 데 집중해왔다.
정치권은 반도체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주 52시간제 예외' 무산은 단순한 노동정책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결정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대만·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국가적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가 두 발 벗고 나서 기업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기업들이 내는 성과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한국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마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정치권은 규제 개혁과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호에만 그치는 게 문제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분야다. 두 발에 족쇄를 달아놓고 '왜 달리지 못하냐'는 억지가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막아서고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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