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수담(手談)]버림은 곧 채움…사석의 철학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내어줄 줄 알아야 수확도 있다

바둑에서 사석(捨石)은 이미 죽은 돌을 의미하는 사석(死石)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미 죽은 돌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돌이다. 반상(盤上)에 놓인 흑과 백의 돌 가운데 가장 외로운 신세. 사석의 사전적인 의미는 작전상 버리는 셈 치고 죽을 위치에 놓은 돌이다. 승리와 패배만 중시하는 이분법의 세상에서 사석은 대우받는 존재는 아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운명이라니, 얼마나 서글픈 처지인가.


하지만 바둑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사석을 그저 버리는 돌 정도로 바라본다면 심오한 바둑의 세계를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 버림은 곧 채움을 의미하는 사석의 철학, 그 깊이를 헤아릴 줄 알아야 진정한 고수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실제로 사석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고수(高手)와 하수(下手)를 구분할 수 있다. 고수는 사석을 활용할 줄 안다. 사석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고수에게 사석은 버리는 돌이 아니라 승리를 도모하는 발판이다. 집착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면 길이 보인다. 그때야 비로소 사석의 진가가 드러난다.


[수담(手談)]버림은 곧 채움…사석의 철학
AD
원본보기 아이콘

반면 하수는 사석을 아까워한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고자 무리하고, 이는 패배의 덫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버림은 곧 채움인데, 버리지 않으려 하니 채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평생 바둑을 둬도 사석의 철학을 제대로 깨치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안의 욕심을 버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집착의 덫에 빠지는 안타까운 행동은 정치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단 하나도 잃지 않으려 행동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어리석은 모습. 환호의 순간이 영원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나아감을 선택하지 못하는 태도.

과거의 정당함은 미래의 타당함을 보증하지 않는다. 과거의 해석 틀에 매몰돼 있으면 변화의 물결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내어줄 줄 알아야 새로움을 품을 수 있다. 자기 전유물로 여겼던 품 안의 그것을, 과감하게 내놓고 상대도 품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당장은 아깝고 허전한 느낌이 들겠지만, 언젠가는 빈 곳을 채워주고도 남을 수확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바둑도 정치도 결국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 아니겠는가. 기득권을 내어주는 자세로 임하는 사람 앞에서 타인의 편견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버림은 곧 채움을 잉태하기에, 그걸 거스를 수 없는 게 인간이기에….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top버튼

한 눈에 보는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