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미래' 쓴 배런 교수
"AI정확성보다 효율성 중시"
인공지능은 길들이는 게 중요
아는 만큼 AI 잘 다룰 수 있어
비판적 문해력 체계적 학습을
인공지능 탓에 또다시 온 세상이 들썩였다. 중국의 작은 스타트업 업체가 개발한 딥시크의 충격이 우리를 경악에 빠뜨렸다. 서른 살 내외의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서 100억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수천억 원 이상 들여서 개발한 것과 비슷한 성능을 갖춘 인공지능을 내놓았다는 건 놀라웠다. 특히, 미국이 기를 쓰고 수출 통제에 나선 고사양 칩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경이로웠다.
조건이 빤히 주어진 한계는 대부분 인간을 별로 좌절시키지 못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딥시크의 등장은 알려진 유한성은 궁극적으로 인간 창의성을 북돋운다는 진리를 새삼 환기해 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딥시크의 개발을 둘러싸고 과연 그 돈만 썼을까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딥시크의 답변 중 중국 관련 사항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크고 작은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딥시크가 획기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딥시크 모델이 우리 삶에 진짜로 의미하는 바는 분야별 인공지능의 개발이 매우 빨라지리라는 점이다. 챗GPT와 마찬가지로, 대용량 언어 모델을 활용하는 딥시크의 개발 비용이 낮아진 건 전문가 모듈 덕분이다. 기존 인공지능 모델이 질문을 던지면 책 전체를 일일이 뒤져서 학습한 후 답을 한다면, 딥시크는 먼저 전문가에게 물어본 후, 부족하면 더 책을 찾아서 답하는 학습 방식을 택했다. 대다수 기업은 분야별로만 잘하면 되므로, 웬만한 기업은 필요한 인공지능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된 셈이다. 바야흐로 어느 분야에서든 인공지능과 공생하고 협업하는 시대가 부쩍 다가온 느낌이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대학이나 대학원 교육을 받고 획득한 지적 능력이 더욱 빠르게 대체될 위기에 놓였다. 문서를 번역한다든지, 대출 신청을 검토한다든지, 법정 사건에서 법률과 판례를 수집하고 논점을 정리한다든지, 회계 자료를 정리해서 최적화한 절세 방법을 알아낸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가 분분하다.
많은 전문가가 경고하듯, 우선 인공지능의 답은 환각(오류)의 문제가 무척 심각하므로,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문해력을 갖추는 게 필수적임을 기억하자. 챗GPT든 딥시크든, 현재의 언어 학습 모델로는 원리상 오류 문제를 일정 수준 이상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인종이나 민족, 성별이나 신분에 대한 편견과 독설로 오염된 경우도 흔하다. 가령, 화상 채팅을 통한 입사 면접에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흔히 ‘책꽂이 편향’을 보인다. 배경에 책이 가득한 책장이 보이면, 지원자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쓰기의 미래'(북트리거)에서 나오미 배런 미국 아메리칸대학 명예교수가 밝혔듯, 거대 언어 모델을 활용한 인공지능은 근본적으로 “실제로 어떻게 세상이 작동하는지 또는 어떻게 인간이 그런 작동 방식을 파악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문장들을 대규모로 모아서 정교한 알고리즘에 맞춰 정렬한 후, 문장을 자동으로 토해낼 뿐이다. 이 답은 대개 정확성보다 효율성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배런 교수는 인공지능을 우리에 맞추어 적절히 길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글쓰기, 즉 질문에 대한 답을 인공지능에 온전히 맡기면,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힘이 약해진다. 우리는 “뜻을 전하고 희망을 나누고 자신을 찾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쓴다.” 인공지능은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 질문을 던지면 인간이 쓴 것을 모두 뒤적여서 편집한 후 적당히 화면에 던질 뿐이다.
아울러 우리가 일단 작성한 원고를, 즉 잠정적 답변을 교정하고 교열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사고를 숙고하고 비판하고 개선하면서 더 큰 지혜”를 얻곤 한다. 더 나아가 글을 남에게 내보이기 전에 타당성과 진실성을 검증하고,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남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히 단어와 문장을 손질한다. 그 과정은 공동체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간관계를 성찰하는 힘을 길러준다. 인공지능에 그 일을 맡기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묻자마자 순식간에 쏟아 내는 이 답에 무작위적 오류와 쓰레기 같은 편견이 섞여 있더라도, 그 전체가 무가치한 건 당연히 아니다. 가령, 글을 쓸 때 맞춤법 검사 기능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 틀린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한테 자동 검사를 한 차례 거쳐 과제를 제출하라고 말하곤 한다. 초보자들에게는 꽤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 기능을 더 잘 활용한다. 문장과 단어 중 어디가 맞고 틀린 걸 잘 판별할 수 있기에, 글 쓰다 무의식중에 실수한 걸 바로잡을 수 있어서다.
최근 출판계에선 인공지능을 이용해 문서를 일차 번역한 후, 우리말에 능하고 외국어 실력도 갖춘 편집자가 원문과 대조하면서 이를 매만지는 식으로 작업하는 걸 고민하는 곳이 많다. 이러면 작업 속도가 빨라지고, 어쩌면 오역도 줄일 수 있는 까닭이다. 확실하지 않은 지식을 검증할 때, 인공지능에 일단 한 번 물어보는 관행도 확산 중이다. 바둑 기사들이 인공지능과 함께 최적의 수를 검토하듯 말이다. 이처럼 전문 지식을 갖춘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은 우리 일상의 풍경을 크게 바꿀 게 분명하다.
모든 기계는 그 올바른 사용법을 저절로 깨닫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공지능 역시 제대로 쓰려면 어떻게 사용할지를 정확하게 배우고 익혀야 한다. 모든 것은 아는 만큼 잘 보이고, 공부한 만큼 잘 다룰 수 있다. 인공지능이 넘치는 세상일수록, 자기 분야를 깊게 공부하고 세부까지 통달한 인간이 더욱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배런은 말한다. “인간의 글쓰기는 인간 마음을 날카롭게 벼리고, 다른 사람과 이어주는 마법 검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검이 빛을 발하도록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비판적 문해력은 체계적으로 학습된 지식, 어떤 지식을 더 넓은 맥락에 놓고 조망하며 성찰하는 훈련, 반복해서 문장을 쓰고 다듬는 훈련 과정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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