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지주사 전환 '제동'
거래소, 빙그레 인적분할 신청 반려 가능성
자사주 꼼수 차단했지만, 오너일가 지배력 커져
국내 식품기업 빙그레 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다 돌연 철회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지주사 전환 계획을 세운 팀장이 승진할 정도로 빙그레 내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이사회 결정 두 달여 만에 취소하면서다. 업계에선 정부의 강화된 소액주주 보호 기조로 인해 빙그레의 자사주 전환이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빙그레는 지난해 11월22일 이사회를 열고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을 결정했다. 당시 빙그레는 "경영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미래 지속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 및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계로의 전환, 인적분할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사는 올해 설명절 연휴 직전인 지난달 24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분할계획 일체를 철회하기로 했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소통한 결과, 인적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 이전에 조금 더 명확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 마련이 필요하고 향후 사업의 전개 방향이 보다 분명히 가시화된 후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이유다.
거래소, 빙그레 분할 신청 반려했나
업계에선 한국거래소가 빙그레의 '분할 재상장 예비심사'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존 빙그레 주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다. 거래소는 기업이 분할 재상장을 신청하면 상장 규정상 질적·양적 등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등을 심사하는데, 투자자 보호 부분에서 빙그레의 분할 계획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1월 거래소는 기업구조 변경과 관련한 기업 실사 체크리스트를 수정하고, 분할 재상장 시 기업이 투자자 보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했는지 살펴야 한다는 주문을 담은 바 있다. 지난해 4월 상장 규정 시행세칙을 손본 데 이어, 주관사가 분할 후 존속·신설법인의 재무 상태 평가, '자사주 마법'을 막기 위한 주주 보호 노력을 실사 단계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항목을 추가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기업의 분할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지배구조가 강화된 반면, 기업가치가 떨어져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했던 탓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이달 초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의 상장기업 인적분할을 분석한 결과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이른바 '자사주 마법'이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의 마법은 회사의 인적분할 과정에서 기존회사의 자사주에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해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현상이다.
이들 상장사는 인적분할과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지배주주의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인적분할 이전에 비해 각각 15%포인트, 11%포인트 증가해 지배력이 크게 상승했다. 반면 외부 주주의 시가총액 보유 비중은 인적분할 이전에 비해 6%포인트 감소해 지배력뿐만 아니라 부의 배분에서도 왜곡이 발생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실제 인적분할의 경우 새롭게 설립되는 회사의 주식을 기존 주주에게 배정해 물적분할보다 소액주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인적분할은 각 회사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시장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고, 주주에게 돌아가야 할 회사의 수익금이 신규법인 초기 비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인적분할 후 모자 회사가 모두 상장하면 기업가치가 중복 계산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모회사 기업가치는 자체 사업 부문과 자회사 지분가치 등으로 구성되는데, 자회사가 상장하면 투자자는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가치를 할인해 평가한다.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가치가 이미 주식시장에서 반영된 만큼 지주사 주가 할인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총수 일가 지배력 확 커진다…'꼼수' 승계 논란
앞서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그린푸드를 인적분할 하며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확대된 바 있다. 2022년 상반기 말 기준 현대그린푸드 지분율은 정교선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회장 23.8%,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12.7%,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1.9%다. 총 38.4%였지만, 인적분할 이후인 2023년 3분기 말 기준 현대지에프홀딩스(구 현대그린푸드) 지분율은 정지선 회장 38.1%, 정교선 회장 28.0%, 정몽근 명예회장 8.0%다. 총 74.1%로 커졌다.
빙그레가 인적분할할 경우 김호연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지배력 손쉽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빙그레의 경우 지난해 기준 빙그레 주요 주주는 김호연 회장(36.75%), 김구재단(2.03%), 물류회사 제때(1.99%), 현담문고(0.13%) 등이다. 이들 지분을 합하면 40.89%다. 물류회사인 제때가 빙그레홀딩스의 현물출자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제때는 빙그레홀딩스 주주가 될 수 있다. 제때 주요 주주는 김호연 회장 장남 김동환씨(33%), 장녀 김정화씨(33%), 김동만씨(33%)다. 이에 따라 '김호연 회장 자녀→제때→빙그레홀딩스→빙그레'의 지배구조가 구축될 수 있다.
빙그레는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 10.25% 전량 소각하는 등 '자사주 마법'을 원천 차단하며 주주들의 공개매수 참여 호응도를 이끌었지만, 사실상 소액주주들은 사업회사 지분을 선호하는 만큼 지주사 현물출자 유상증자 참여를 꺼리는 것을 고려하면 제때의 빙그레홀딩스 지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김호연 회장의 자녀들이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어 '꼼수 승계'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업계에선 향후 빙그레가 인적분할 및 지주사 전환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1955년생인 김 회장이 고령인 만큼 김동환 사장의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빙그레 관계자는 "공시한 것과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충분히 검토한 결과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재추진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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