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19석 중 18석 확보
MBK연합, 법적 다툼 예고
"법령 따라 문제 해결할 것"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현 경영진이 23일 임시주주총회에서 경영권 수성에 성공했다. 자신들이 제안한 인사들이 전부 이사로 선임됐고, 분쟁을 벌이던 영풍 ·MBK 파트너스(MBK연합) 측 인사들은 모두 이사회 입성이 좌절됐다.
임시주총을 하루 앞두고 최 회장 측이 꺼낸 영풍 의결권 제한 조치가 막판 뒤집기 카드로 주효했다. 하지만 MBK연합 측은 의결권 제한이 사실상 불법 행위라며 소송을 예고해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 모양새다.
MBK, 고려아연 이사회 장악 '불발'
고려아연은 이날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임시주총에서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을 표결에 부쳐 출석 의결권 73.2% 찬성으로 의결했다. 이 안건은 현재 제한이 없는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 수의 상한을 19명으로 설정하는 내용으로, 최 회장 측이 제안했다. 이사 수 상한 설정안이 가결되면서 이날 주총에서 선임될 이사 자리는 7석으로 제한됐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이사가 모두 12명으로 이 가운데 1명(장형진 영풍 고문)만이 MBK연합 측 인사다.
MBK연합 측은 당초 이번 임시 주총에서 자신들이 추천 이사 후보 14명을 이사회에 새로 진입시켜 과반을 확보, 이사회를 장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사 수 상한 설정안 가결로 이 전략은 수포가 되었다. 또 이어진 이사 선임 안에서도 고려아연 측 인사 7명이 표결을 통해 모두 이사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MBK연합 측 인사는 14명 전부 낙마하면서 고배를 삼켰다.
고려아연은 또 주총에서 제1-1의안으로 상정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을 출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소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경영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조치로 꼽힌다.
당초 집중투표제는 최 회장 등이 MBK연합 측 추천 이사 후보들의 이사회 진입을 막기 위해 꺼내든 '히든 카드'였다. 하지만 앞선 21일 법원이 MBK연합 측이 신청한 의안 상정 금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집중투표제 도입은 이날 의결에도 불구하고 이후 주총부터 적용 가능해졌다.
'영풍 의결권 제한' 변칙 작전 주효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날 임시주총은 애초 MBK연합 측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됐다. 법원이 집중투표제 도입에 제동을 건 데다가 MBK연합 의결권 지분이 46.7%로 과반에 육박해 이들이 제안한 이사 후보 14명이 무난히 이사회에 입성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의결권 지분이 34.35%에 불과했던 고려아연 측으로선 MBK연합 측 인사들의 이사회 입성을 최대한 저지하는 한편,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를 한 명이라도 더 통과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판세는 최 회장 측이 영풍의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뒤바뀌었다. 고려아연은 전날 호주 계열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이 소유하던 영풍 주식 19만여주를 575억원에 장외매수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이 호주에 세운 선메탈홀딩스를 통해 설립한 SMC가 이번에 사들인 주식은 영풍 전체 주식의 10.33%를 차지한다. 지분 거래로 고려아연과 선메탈홀딩스, SMC, 영풍, 다시 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상호순환출자 고리를 만들면서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이 조처로 MBK 연합 지분 가운데 영풍 지분 25.42%의 의결권이 묶여 15.55%가량만 남게 됐다.
MBK연합 측은 상호주 의결권 제한에 관한 상법 조항은 국내 법인인 주식회사들에만 적용되는 만큼 SMC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력 반발했지만, 기울어진 판세를 재차 뒤집긴 역부족이었다. 이날 영풍 측 이성훈 변호사는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황당한 얘기도 보도자료로 돌았고, 주총장에서도 (같은) 얘기를 듣고 나니 황당하고 강도당한 기분"이라며 주총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요청 역시 의결권 제한 속에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MBK연합 측은 주총에서 이사회 의장에 대한 교체 제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최 회장 측의 주식 의결권 제한 조치에 대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만큼 우선 임시주총에서 이사회 의장을 바꿔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이 역시 의결권 제한 속 진행된 주총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 결국 제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MBK연합 측은 임시 주총 효력 정지 가처분 및 상호주 의결권 제한 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MBK연합 측은 이날 임시주총 말미 입장문을 내고 "임시주총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대해 저희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저희는 오늘 임시주총의 위법적인 결과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 및 원상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자본시장의 제도와 관련 법령에 따라 비록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뚜벅뚜벅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국(왼쪽)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고려아연 노동조합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장 앞에서 노조원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시작부터 파행… 6시간 지나서야 안건 논의
이날 임시주총은 시작부터 파행을 겪었다. 당초 오전 9시 개회 예정이었지만 6시간을 넘긴 오후 3시10분께 안건 논의가 시작됐다. 임시주총 개회가 이처럼 늦어진 이유는 고려아연 측이 임시주총 개회 직전 4750주에 대한 260장의 중복 위임장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임시주총 현장에 나오지 않은 주주 중 일부가 고려아연과 MBK연합, 양측에 중복 대리하도록 위임장에 사인했다는 것이다.
MBK연합 측은 고려아연 측이 출석 주식 수를 곧바로 공개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는 대기업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MBK연합 측은 또 고려아연의 우호 주주들이 주총에 불참할 경우,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 통과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고려아연이 의도적으로 주총을 파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방 속에 중복 위임된 4750주는 결국 무효처리됐다.
한편 이날 임시주총장 한쪽에서는 '단결투쟁'이 적힌 머리띠를 두른 고려아연 노동조합이 접수가 진행되는 내내 곁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들은 10분에 한 번씩 "국가핵심 기술, 해외유출 막아내자. 국가핵심산업 고려 아연 지켜야 된다. 지켜내자"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지닌 피켓에는 '투기자본 MBK' '적자기업 영풍' 등 MBK연합에 대한 비판적인 문구가 적혀있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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