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개봉한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에는 중국 노나라 출신 공자(BC 551~479)가 등장한다. 노나라의 왕 노정공은 당대 최고의 책략가인 공자를 등용해 무너져가는 왕권의 부활을 노린다. 공자는 영화 속에서 사상가가 아닌 제갈공명과 같은 지략가로 활약한다. 말 한마디로 제나라에 빼앗겼던 영토를 다시 빼앗아 오는 장면은 외교담판의 절정을 보여준다.
전술도 뛰어나다. 100개의 우마차로 500대의 전차를 물리치는 계교를 부린다. 이때 등장하는 단어가 치중(輜重)이다. 치중이란 전쟁터에서 군량미를 실은 우마차를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장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겸허’를 뜻하기도 한다. 도덕경 26장에서는 치중이 한 나라의 리더가 여겨야 할 소중한 자질로 풀이한다.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격변의 시기에 우리는 이런 덕목을 갖춘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K-방산 정책분야의 리더다. 석 청장은 취임사에서 "글로벌 4대 방산 강국 도약과 방산 수출 금융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1년을 맞이한 성적표는 어떨까. 방산 수출액은 2022년 173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135억 달러, 2024년에는 100억 달러에도 못 미쳤다. 3년 연속 감소세다. 약속한 방산 수출액 200억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런데도 석 청장은 이달 사우디아라비아와 노르웨이를 방문해 "올해 방산 수출액이 역대 최대 방산 수출 성과가 될 것"이라며 4대 방산 강국을 또 한 번 약속했다. 배경은 이렇다. 협상 연장 등으로 지연된 약 94억 달러 규모 수출사업이 올해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약속은 가능할까.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3년 국제 무기이전’ 보고서에 따르면, 2019∼2023년 대한민국은 세계 방산 수출 시장에서 2.0% 점유율로 10위를 기록했다. 지난 5년(9위 2.4%) 기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석 청장 약속대로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진입하려면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현재 4위권인 중국(점유율 5.8%)을 뛰어넘어야 한다. 방산 수출액은 연간 500억달러 이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수출 밑그림은 없다.
방산 리더들이 내세워야 하는 것은 방산 수출 목표액이 아니다. 정책이다. 석 청장은 이미 약속한 금융정책 숙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국회에서는 아직 방산 방위산업 발전 및 지원에 관한 일부법률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법안 처리시간도 장담할 수 없다.
방산 수출 지원을 위한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수출입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수출입은행의 법정 자본금 한도가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실제 출자는 2조 원에 그쳤다. 5년에 2조 원씩 늘려 25조 원까지 한도를 늘린다는 계획인데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특정 대출자에게 자기자본(25조 원)의 40%(10조 원) 이상을 대출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도 수출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도덕경 26장에 나오는 문구를 다시 한번 되새기자. 도덕경은 ‘이신경천하(而以身輕天下) 경즉실본 조즉실군(輕則失本 躁則失君)’라고 했다. 자신의 몸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가볍게 놀릴지 말아야 한다. 가벼우면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하면 군주라는 직을 잃게 된다고 했다. 방위산업의 리더들이 알아야 할 덕목이다.
양낙규 군사 및 방산 스페셜리스트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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