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정부 출범으로 한국의 전기차 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내연기관차 배출량 규제, 전기차 판매율 의무화 규제가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까지 손질 당할 경우 미국에 투자한 전기차·배터리 관련 회사들이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17일 한국환경연구원에 따르면 김성진 탄소중립연구실 연구위원과 김현규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부연구위원은 최근 ‘KEI 포커스’를 통해 “내연기관차 배출량 규제와 전기차 판매율 의무화 규제가 폐지된다면 미국 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는 크게 둔화할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한국 전기차 제조업체의 수출 및 시장점유율 감소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유로는 출범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환경보호청(EPA) 규제 폐지를 꼽았다. 연구진들은 “바이든 정부의 EPA에서 추진된 자동차 배출기준 강화, 전기차 확대 유인 등 핵심적인 기후 환경·정책은 대부분 축소·폐지될 전망”이라면서 “환경보호보다는 탈규제와 자원, 특히 화석연료 개발로 국가정책의 초점이 이동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기후환경 정책의 변화는 속도감 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트럼프 1기 때와 같이 양원 모두에서 과반의 표를 얻으면 연방 규정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의회검토법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보류 중인 규제의 즉시 중단, 최근 게시된 규제의 발효일 연기, 새로운 행정명령의 발동으로 주요 규제를 폐지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전기차에 유리한 정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규제가 다중오염물질 배출량 기준 규제다. 지난해 4월 바이든 대통령은 경형·중형차에 더 엄격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설정했다. 2032년에 출시되는 승용차는 6년 전보다 탄소를 최소한 49% 줄여야 한다. 8년 안에 신차판매 중 배터리 전기차 비중을 56%로 확대하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이러한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전기차 업계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청정산업 세액공제 폐지 여부도 관건이다. IRA는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8월 정부부채를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법이다. 이 과정에서 청정에너지에 대해 세액공제가 대폭 강화됐다. 미국에서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면 관련 세혜택을 받도록 하고, 구매자에게도 최대 7500달러에 달하는 세액공제를 제공했다. 국내 자동차, 배터리 회사들도 IRA 혜택을 위해 대규모 생산설비를 투자한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IRA가 “신종 녹색 사기”라고 비난하며 폐지를 예고한 상태다. 특히 IRA가 전기차 세액공제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의 기술적 결함, 막대한 인프라 구축 비용, 간헐성, 과도한 공간 차지로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친다는 게 이유다. 이에 보고서는 전기차 소비자와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세제 혜택 등 각종 재정지원이 축소·폐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전체 IRA 투자금액의 32%(약 349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2기에서 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혜택을 축소·폐지할 경우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다만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는 미국 내 대규모 설비투자를 전제로 하고 있어 법제 변경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연구자들은 세밀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트럼프 2기 정부가 추진할 기후·환경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정부, 연구기관 기업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세부 정책별로 수립해 논의를 정기화하는 등 적시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정책을 ‘가미카제(2차대전 당시 자살특공대)’로 부르며 철폐를 시사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집 ‘의제47’에 환경정책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는데, 대부분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없애는 내용이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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