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수만 채운 뒤 계엄 선포…심의 아닌 통보
'전두환 신군부'도 지켰는데, 회의록조차 없어
'통치행위' 법리적 흠결…내란 혐의로 기울 듯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주장했지만 법리적 흠결에 대한 답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두환 신군부'도 지킨 국무회의 기록마저 남기지 않는 등 법적 절차를 어겼기 때문이다. 내란 혐의 적용에 힘을 싣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전 소집된 국무회의는 오후 10시17분부터 단 5분간 진행됐다. 국무회의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소집할 수 있다. 다만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국무위원 서명도 필요하다. 이후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
취재를 종합하면 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은 오후 8~9시께 소수의 국무위원을 용산으로 먼저 불러들였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후 한 총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 '안보 라인'이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계획을 인지한 한 총리 등은 반대를 표명했고 일부 국무위원은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이후 '심야' 국무회의가 급히 소집된 점을 고려하면 당초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심의라는 계엄 선포의 법적 절차마저 건너뛰려 했다고 추론하는 게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렇게 소집된 국무회의마저 법리적 흠결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11명이라는 의결정족수만 채워졌을 뿐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해야 하는 사유나 실행 계획 등을 공유하지 않았다. '국무회의 심의'가 아니라 사실상 계엄을 '통보'한 것이다.
한 총리는 지난 11일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당시 회의에 정당성이 없다고 인정했다. '계엄 선포 문서에 부서(서명)했느냐'라고 묻는 말에 "(문서를) 본 적도 없고, 부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는 국무회의가 아닌 게 맞느냐'라는 질의에도 "동의한다"고 밝혔다.
뒤늦게 국무회의에 불려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회의장에 들어갔는데 옆에서 '계엄'이라고 딱 두 글자를 듣고 놀라 막아야 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회의 시작도, 마친다는 선언도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잠시 들어왔다 나갔다"며 "(국무위원들이) 당황한 상황에서 누군가 휴대전화를 틀었고 (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 육성이 흘러나왔다"고 밝혔다.
애초 저지할 수 없도록 진행된 '계엄 회의'를 놓고 내각의 책임을 과도하게 묻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권과 무관하게 업무를 지속해야 하는 공직사회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신군부의 '광주 학살' 배경이 된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선포안은 그해 '제42회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언제, 어디서, 누가 참석하고 배석했는지 회의록이 문서로 남아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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