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밑거름이다. 경제성장률 기여도를 따질 때 수출, 내수와 함께 투자가 주요 요소로 고려되는 이유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에 그쳤다. 수출 기여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내수와 설비투자 기여도는 각각 0.3%포인트와 0.6%포인트였다. 투자 위축까지 겹쳤다면 플러스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투자는 심리적인 영향이 큰 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고 돈을 써야 하는 게 투자의 속성인 만큼 주변 여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각종 불안 요소를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의 주요 축인 기업은 더욱 예민하다.
투자에 주목하는 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파장 때문이다. 기업들은 계엄 사태 직후 내부 회의를 거쳐 환율 등 대응 방안을 논의했는데, 내년 투자계획도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계에선 무엇보다 심리적인 영향이 큰 투자 위축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업들이 투자를 다시 들여다보는 건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계엄 사태는 정권 교체 가능성을 키웠다.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대선 모드까지 염두에 둬야 할 정도로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 역점 사업이 달라진다. 원전과 태양광 등 에너지 사업이 단적인 예다. 지난 정부에서 홀대받았던 원전이 현 정부에서 주목받고, 태양광은 정반대가 됐다. 기업이 정부 눈치를 보고 투자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정부 기조도 반영해야 하는 게 우리 기업들의 현실이다.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우리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적어도 수십조원이다. 일부 기업이 올해 발표한 내용을 보더라도 LG그룹은 올해부터 5년간 국내에 총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향후 3년간 63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연평균으로 이들 2개 그룹이 지출하기로 한 투자 비용만 따져도 40조원을 넘는다. 수십조원 자금이 경제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못 한 채 방치된다면 내년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기업으로선 국내 투자 대신 해외 사업장 확대를 선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ODI)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로 1988년 이후 이미 최고치를 기록한 상태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은 미국에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내년에 들어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행정부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분주한데, 관세 인상으로 압박하기 시작한 만큼 대미투자가 더욱 필요하다. 국내에서 사용할 실탄을 해외에서 쓸 수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야기한 계엄 파장에 대해 "짧은 시간에 우리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친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쟁은 격화됐고 정책은 실종됐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에 둬야 할 국가 지도자가 오히려 투자 위축을 야기해 우리 경제를 자해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심각하다. 잠재성장률 1%대에 그친 한국 경제에 돈줄마저 끊길 위기다. 그 대가는 무엇으로 치를 수 있나.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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