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종양인 '종격동 림프종' 진단
수간호사, 학생 위한 시험장 준비
"시험 못 보면 희망 잃을 것 같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재수생이 혈액암 진단을 받으며 시험 응시에 어려움을 겪자, 병원 측이 발 벗고 나선 사연이 알려졌다.
14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평소 건강했던 가은 양(가명)은 얼마 전부터 기침이 멈추지 않아 동네 병원에 방문했으나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이에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영상 검사를 진행한 결과 좌우 양쪽 폐 사이의 공간인 '종격동'에 종양이 발견됐다. 이어진 조직 검사에서는 종격동 림프종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림프종은 국내에서 가장 흔한 혈액 종양으로, 림프계 조직에 있는 림프구가 악성으로 변하는 종양이다.
가은 양은 영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 이에 특화된 대학교에 진학을 원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더 수능 시험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감염 위험으로 장시간 병원 밖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하루 만에 병원이 위치한 서울에서 집과 고사장이 있는 경상남도까지 다녀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사연을 접한 윤선희 수간호사는 유관부서에 문의해 가은 양을 위한 시험장을 준비하기로 했다. "시험을 못 보면 희망을 잃어버릴 것 같아 딸의 뜻대로 시험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보호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능시험에 임해야 희망도 생길 것이고, 이후 전반적인 치료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는 말에 몇 해 전 병원에서 수능을 치렀던 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실제로 2021년 수능을 일주일 앞둔 당시 재생불량빈혈 진단을 받은 허 모 씨가 서울시교육청과 협의해 특실에서 시험을 본 사례가 있었다.
병원은 3년 전보다 훨씬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교육청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험장 준비를 시작했다. 가은 양이 시험을 볼 독립된 병실 공간, 감독관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대기할 회의실과 휴게실이 있는 21층 특실을 마련하며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 의료진은 가은 양이 수능 시험 후 곧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신체적으로 힘에 부칠 수 있기에 수능 전까지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전을 기했다. 가은 양의 주치의인 혈액내과 민기준 교수는 "시험 후 치료도 잘 마쳐 원하는 대학의 건강한 새내기가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가은 양의 어머니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신경 써주신 의료진들과 병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능 시험을 볼 수 있게 돼 감사드린다"며 "치료 후 건강하게 퇴원해 원하는 학교에도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은 양은 "평소에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마음으로 매 순간 충실하게 생활했다"면서 "대학 입학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축제에서 열리는 공연에 가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예원 인턴기자 ywj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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