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 2 앞두고 기자간담회
"시즌 1 투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
"성기훈 '응징'이란 맹목적 목적에 사로잡혀"
"젊은이들이 게임 참여해도 어색하지 않아져"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난 용서가 안 돼, 너희들이 하는 짓이."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성기훈(이정재)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다. 탈락한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는 살벌한 게임에 다시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더는 어리숙하고 철없는 중년남성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내몰리는 참가자들을 구하려는 영웅이다.
달라진 여정이 다음 달 26일 공개된다. 성기훈은 다시 흰 줄이 간 청록색 체육복을 입고 게임을 한다. 투표를 통해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는 규칙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주최 측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황동혁 감독은 지난 8월 1일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 2 기자간담회에서 "시즌 1의 투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투표를 훨씬 더 강력하고 교묘하게 사용한다. 게임마다 투표하는 과정이 나오고,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한다. 서로의 의지에 반하는 투표를 한, 그러니까 속행이냐 중단이냐를 가지고 양쪽이 갈라져서 더 격렬하게 갈등하고 대립한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종교, 이념, 배경, 성별, 인종 등으로 일어나는 분열과 갈등, 증오를 빗댄 표현이다. 황 감독은 갈수록 격화되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그는 "O와 X로 나뉜 집단들이 어떻게 갈라지고, 어떻게 서로를 증오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지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서로를 반대로 규정하고, 반대자로 낙인을 찍고, 끝없는 혐오를 표현하는 행위가 인터넷 공간을 넘어 일상으로 확장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O 또는 X로 서로의 가슴에 라벨을 붙이고, 좌표를 찍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은 사회, 이 작은 게임장 안의 사람들을 통해 전체 사회의 모습이 ‘지금 이렇지 않은가’라는,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 보여드리고 싶었다."
성기훈은 분쟁의 중심에 자리한다. 시즌 1에서는 천방지축이었다. 아이처럼 굴다가도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고, 천성 자체가 인간적이다. 상금 456억 원을 거머쥔 뒤로 심적 고통에 시달린다.
황 감독은 "상금을 가지고 다시 딸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보려 하지만 이미 근본적으로 변해버린 상태다. 빨간 머리가 그것을 상징한다"며 "'응징해야 한다'라는 맹목적 목적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기한 이정재도 "기훈에게는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이 정말 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비록 힘없고 문제를 해결할 지략은 부족하지만, '이런 일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시즌 2 대본에 그런 심정이 잘 묘사돼 있었다. 반드시 이 모든 것을 바꿔야만 한다는 분명한 목적성이 시즌 1에서 변화한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성기훈의 의도대로 게임이 중단될 리는 만무하다. 시즌 1에서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생존한 201명 가운데 187명이 불우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다시 게임에 뛰어들었다. 상금을 따내 새로운 삶을 시작할 희망에 부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개의치 않는다.
시즌 2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참가자들이 목이 터져라 "한 판 더!"를 외친다. 상당수는 젊은이다. 황 감독은 "예전에는 나이가 꽤 있어야 빚을 지고, 희망이 사라져서 '오징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생각했으나 세상이 바뀌었다"며 "슬프고 애석하게도 지난 몇 년간 20대, 30대의 젊은 친구들도 참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걸 많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뉴스를 보면 10대와 20대들이 코인과 인터넷 도박 등으로 큰돈을 잃고, 빚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한다. 전세 사기, 피싱 범죄, 명의도용 범죄 등이 활개를 치면서 많은 피해자도 양산되고. 이제는 그런 친구들이 게임에 참여해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진 참가자들이 어떤 게임을 할지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정도만 공개됐다. 황 감독은 "어떤 게임을 등장시킬지 오랫동안 고민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게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많은 예상과 특정 게임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간단하고, 패자에 대한 벌칙도 즉각적이고 쉽게 이해돼야 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협동을 요구하는 게임들을 많이 배치했다. 시즌 1의 게임들보다 더 드라마틱해질 거다."
황 감독은 일련의 게임들에 희로애락을 담으며 한 가지 질문에 천착했다고 한다. 바로 인간에게 갈등으로 기울어진 내리막길을 벗어날 자질이 있느냐다. 그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에게 나빠지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지 묻는 내용이다. 시청자도 답을 찾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줄거리 빈틈은 메울 수 있을 거다.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즌 2를 촬영하며 묵은 대전의 한 호텔 앞에 학원가가 있었다. 밤 10시나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학생들이 파김치가 된 얼굴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그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과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의사가 되지 못한 이들을 낙오자로 분류하는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모두가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끊임없는 오징어 게임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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