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는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 검색창에도 새로운 기록을 하나 남겼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승기가 분명해지면서 선거일 밤부터 ‘캐나다 이민’ 관련 온라인 검색이 무려 5000% 폭증한 것이다. 급기야 뉴욕타임스(NYT)에서는 이후 이런 제목의 칼럼까지 등장했다. "캐나다로 이사하지 마세요(Don’t Move to Canada)."
상황은 한 주가 지났다고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매체 워싱턴포스트(WP)에는 ‘해외 이주를 꿈꾸고 있나요? 5개국 이민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조회수 상위를 기록 중이다. 대선 결과를 둘러싼 분열과 갈등의 한 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 당선인이 재선 도전에 나섰을 때부터 이러한 분열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적을 규정짓고, 적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트럼프식 정치전략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동일한 전략으로 2016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이민자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고 이는 모두 민주당 때문’이라는 노골적 메시지가 이번 대선에서 한층 더 극단적으로 되풀이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올가을 휴가 기간 현지에서 만난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하이오주에 정착한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물론, 이웃에 독을 풀고 있다는 주장마저 쏟아냈다. 극단적 반응은 민주당 지지자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결국 경쟁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마저도 이번 대선 캠페인 막판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뉴욕 유세를 ‘나치 집회’에 빗대며 ‘혐오’를 부추기는 파시스트 공세에 나서지 않았던가. 브루킹스연구소는 "폭력적 수사가 쏟아지고 정적을 악마화하고 있다. 이러한 선동적 발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극단주의가 확대되고 있다"고 올해 대선 분위기를 요약했다.
정치 성향을 떠나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번 대선 결과에서 확인된 분명한 사실은 ‘미국인들이 변화를 원했다’라는 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런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만 현시점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이번 대선을 지배하다시피 한 극단적 혐오정치가 남길 후유증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과거 저서에서 ‘정체성 폭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집단의 성원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정체성의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결국 사회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이는 선동적인 혐오 수사가 난무했던 올해 미 대선을 떠올리게 한다. 승자가 확정된 이제는 그 과정에서 확인된 사회적 분열, 신뢰 손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됐다. 그리고 이는 단연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한 NYT 칼럼니스트가 남긴 ‘나의 선언문(매니페스토)’은 그렇기에 눈길을 끈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것, 권력의 감시자가 될 것,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조직 및 단체들을 지원할 것,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할 것…. 갈수록 혐오 정치가 심화하고 있는 한국에도 필요한 선언문이 아닐 수 없다.
조슬기나 국제부 차장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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