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멈춘 경영진 책임 크지만
지금까지 사법리스크에 시달려
뼈깎는 쇄신하면 국민 모두 응원
5만5900원. 지난달 25일 기록한 삼성전자 의 신저가다. 11월6일 5만7300원에 마감하는 등 여전히 '5만전자' 신세다. 개인투자자 400만명이 들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이 무너지면서 '삼성 위기론'이 시장의 화두다. 위기는 어떻게 발현된 것일까. 전문가들의 진단이 쏟아졌다. 20년 차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말한 위기의 원인은 뼈아팠다. 이유를 한데 모아보면 결국 혁신과 도전을 하지 않고 안주한 게 위기를 초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위대한 혁신 기업은 미래를 보고 도전을 해야 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으로 혁신을 해야 한다. '안주한 삼성'이 스스로 위기를 초래했기에 신저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삼성의 안주에 경영진의 무능력 탓만 있을까. 삼성의 시계가 왜 멈췄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과도한 사법리스크는 기업의 투자를 멈추고 위기를 부르는 원인이 된다. 박근혜정부 탄핵 광풍에 휘말려 '국정농단' 사건의 유탄을 맞은 삼성은 이후 오랜 시간 사법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감옥에 두 차례나 다녀왔고 최근까지 8년여간 재판만 총 180여회 참석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은 검찰이 항소해 최근에 또 재판이 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 등 재판도 계속되고 있다. 오너는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경영진은 8년여간 재판에 정신이 쏠렸다. 이 시기 경영진은 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보신주의는 짙어졌다. 삼성을 마구잡이로 흔든 결과가 이렇게 드러난 게 아니겠는가.
사법리스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복잡한 현안인데, 삼성바이로직스만 놓고 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전날 금융위원회는 카카오모빌리티의 회계기준 위반 혐의 제재 수위를 원안보다 한 단계 낮은 '중과실 2단계'로 결정했다. 고의로 분식회계를 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매출액 인식을 총액주의로 하느냐, 순액주의로 하느냐의 문제다. 회계기준의 추상적 내용을 구체적인 경우에 적용하면서 따져봐야 하므로 관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는 회계학상의 문제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은 '고의로' 매출을 부풀렸다는 혐의로 가장 높은 양정 기준인 '고의 1단계'를 적용했다. 최종 제재는 증선위가 하는데 내부에선 '제2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일각에서도 증선위가 고의적 분식회계로 낙인찍을 경우 주요 주주인 글로벌PE들이 행정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장부상의 가치와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 가운데 어느 회계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또 자회사와 관계회사 중 어디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지와 같은 회계학상의 문제였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런데도 여전히 회계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수사 역시 감독당국 요청에 의해 진행됐다. 감독기관은 분쟁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돼서는 안 되며, 시장의 안정을 위해 분쟁의 여지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 신저가 책임론에선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외부' 시각에만 급급해 '내부' 단속에 실패했으며, 혁신과 도전을 하지 않고 스스로 멈췄다. 전적으로 삼성 수뇌부 책임이다. 하지만 TSMC와 비교하면 삼성이 처한 환경에 쓴웃음이 난다. TSMC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3배가 넘는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만의 TSMC는 국가가 나서서 사활을 걸고 회사를 지원한다.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기업을 대만 국민 모두 응원한다.
삼성 수뇌부가 3대 쇄신책을 내놓고 고강도 구조조정과 인적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인텔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하길 바란다. 그리고 더는 외부 변수에 의해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삼성은 국민의 풍족한 노후 염원이 담긴 종목이다. 삼성의 주도주 복귀는 이제 기다림의 시간에 진입했다.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소액주주 400만명과 국민의 노후를 위해서 말이다.
이선애 증권자본시장부장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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