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성폭력 범죄자 거주 제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추진했으나
21대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
최근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71)이 출소한 뒤 머물던 경기 안산시 주택에서 2㎞ 떨어진 인근 거주지로 이사한 사실이 확인됐다. 2020년 12월 출소 이후 4년간 거주하던 주택의 월세 계약이 끝나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두순의 새 거주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난해 폐기된 '한국형 제시카법'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의 정식 명칭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한 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시설에 의무 거주하도록 법원이 ‘거주지 지정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법 적용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나 3회 이상 성폭력 범죄자 가운데 10년 이상 선고형을 받은 고위험 성범죄자다. 이들이 지정된 거주지를 하루 이상 벗어나려면 보호관찰소장이 허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거주지를 벗어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미국의 제시카법에서 착안했다.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범죄 피해자인 '제시카 런스퍼드'의 이름에서 따왔다. 12세 미만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최소 25년 징역형, 위치추적 장치 영구 부착, 학교나 공원 주변 3000피트(610m) 이내 거주 금지 등이 법의 핵심이다. 현재 플로리다를 비롯해 30개 이상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반면 한국형 제시카법은 올해 5월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지난해 1월 법무부는 5대 핵심 추진 과제로 '한국형 제시카법'을 선정했다. 그해 10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직접 입법예고 브리핑에 나섰다. 지난 1월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헌법 제14조가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 주된 논점이었다.
다만 22대 국회에서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지난 7월 같은 이름의 법안을 새롭게 발의한 상황이다. 김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법무부가 해당 법안을 너무 늦게 제출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반경 1㎞ 이내 신상정보공개 성범죄자가 거주하는 학교 현황’에 따르면, 전체 어린이집의 59%(1만6280곳), 유치원의 51%(3892곳) 주변 1㎞ 내 성범죄자가 거주하고 있다.
조두순의 새 거주지에서 300m 내 초등학교가 있다. 반경 1.5㎞ 내에는 초등학교 4곳, 어린이집은 30여곳이 있다. 조두순 이웃이 된 주민들은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다. 실제로 조두순이 출소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피해 아동 부모는 불안감에 시달려 20여년간 살았던 안산을 떠났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안산시는 시민 불안 해소 및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두순은 2008년 아침 등굣길의 8세 여아를 끌고 가 성폭행을 저지른 인물이다. 교도소에서 12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안산에서 거주하고 있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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