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그간 제시해온 선결 조건을 언급하지 않은 채 휴전 협상 가능성을 거론해 전 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세에 밀려 나온 타협안이라는 관측과 함께 휴전에 대한 기대가 자극을 받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실제 협상이 이뤄질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신중론이 뒤따른다.
9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헤즈볼라 2인자인 나임 카셈은 전날(현지시간) 영상 연설을 통해 나비 베리 레바논 의회 의장이 휴전이라는 명목으로 이끄는 정치 활동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카셈은 "휴전이 성사되고 외교의 장이 열리면 다른 세부 사항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이 휴전 협상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되면서 중동 긴장 악화에 치솟은 국제유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주요 외신은 카셈의 발언이 가자지구 휴전 없이는 군사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던 기존의 입장이 변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휴전 협상에 여지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카셈의 이날 발언 전에도 헤즈볼라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 포착됐었다며 이스라엘의 공세가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레바논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에 헤즈볼라가 시아파가 주로 거주하는 레바논 남부에서 피란민이 대거 발생하는 등 이스라엘 공습에 따른 압력을 견디기 어려워 입장을 수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지난달부터 그간 교전을 하던 접경지 레바논 남부를 넘에 수도 베이루트 근처나 도심까지 공습의 범위를 넓혔다.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 남부에서 사단 병력을 계속 투입하는 등 지상전을 확대해가고 있기도 하다.
레바논 정치권이나 헤즈볼라 내부에서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힘에 밀려 휴전 가능성을 타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레바논 정치인 술레이만 프란지에는 "(헤즈볼라의) 우선순위는 이스라엘의 공세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도 헤즈볼라가 휴전을 거론한 것은 그만큼 타격을 받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휴전을 거론한 것은 헤즈볼라의 입장이 불리해진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헤즈볼라가 입장을 전환한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은 데다 이스라엘도 외교적 해법에는 관심이 없어 당장 휴전 협상이 진전을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외교적 모멘텀을 창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바논에서 일하는 한 외교관은 이스라엘의 지배적인 논리는 이제는 외교라기보다 군사라고 지적했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모하나드 하게 알리 부센터장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며 "헤즈볼라는 정치를 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충분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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