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성(姓)·본(本)을 모(母)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혼인신고를 할 때 제출하는 신고서에 포함된 질문이다. 혼인신고를 하면서 해당 문항에 ‘아니오’라고 답하면 태어날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우선 따르게 된다. 혼인신고 당시 미래에 태어날 자녀의 성에 대해 협의를 해야만 엄마 성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대가 변화한 만큼 부성(父姓) 우선주의를 폐지하고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협의해 성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4월 열린 2024 국가비전 입법정책 컨퍼런스에서는 이런 내용을 담은 규정의 개정이 입법 과제로 제시됐다. 최근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의 국정감사 이슈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를 담았다.
아빠 성은 원칙, 엄마 성은 예외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모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상 혼인신고서의 성·본의 협의 항목에서 ‘예’를 택한 뒤 별도 협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녀에게 모의 성과 본을 물려줄 수 없다. 협의서에는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자녀의 성을 무조건 한쪽의 성으로만 정해야 해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혼인 신고 뒤 나중에 추후 아이가 엄마의 성을 따르게 하려면 절차는 더 복잡해진다. △이혼 후 다시 혼인 신고를 하거나 △자녀 출생 후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해야 한다. 성·본 변경 청구 시에는 자녀의 복리를 위해 변경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증명해야 해 시간과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부성 ‘강제’에서 부성 ‘우선’으로
과거에는 부성이 강제됐지만 2005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부성을 우선하는 것으로 법이 개정됐다. 2005년 헌재는 민법 제781조 제1항의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2003헌가5). 일방적으로 부의 성을 사용할 것을 강제하면서 모의 성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이후 개정된 민법에서는 부성주의 원칙으로 하되, 부모 간 협의에 따라 예외적으로 모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부성 ‘우선’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자녀의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자녀의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관해 응답자의 10명 중 7명(70.4%)이 찬성했다.
성씨개선 연구가인 이기수 법학박사는 “사회 변화에 맞춘 개정이 필요하다”며 “△성·본 변경 절차의 복잡성과 심리적 부담 △부모 성(姓) 결합 선택권 부재 △성(性)소수자 가족의 성·본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모의 선택권도 중요하지만 자녀의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자기결정권을 부여해 자녀도 성·본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적 유연성을 보장하는 성씨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성·본 선택권 확대와 가족 다양성을 반영하는 개정은 양성평등 실현에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자녀의 성을 정하는 데 기한이나 방법이 크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 영국은 부모가 자녀의 성과 이름을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와 관련해 법률의 제한이 없다. 프랑스는 부모가 자녀의 성을 선택할 수 있으며, 부의 성이나 모의 성 중 택일을 할 수 있고 그 두 성을 병기할 수도 있다는 민법 규정을 두고 있다. 중국도 혼인법 제22조에 따라 자녀가 부의 성을 따를 수도 있고, 모의 성을 따를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중국은 2016년 두 자녀 정책 시행 이후 둘째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상하이시에서는 신생아의 10%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는 통계도 있다.
현재 부성 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2022년 이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무부는 “자녀 출생 때마다 자녀의 성에 대해 협의하도록 한다면 자녀의 성에 대한 불확정성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고,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 가정 내 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법무부 산하 기구인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위원장 윤진수)’는 민법 제781조의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부모의 협의를 원칙으로 하는 등 자녀의 성·본 결정방법에 관한 민법 제781조의 전면개정을 추진할 것을 권고하기로 의결했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안현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꼭 봐야할 주요뉴스
30년간 여성 대표 한명도 없었다…'막힌 천장 뚫기...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