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크 콘퍼런스서 언급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 칩 생산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대만 TSMC 외에 다른 업체에 맡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업계에선 엔비디아의 최신 칩을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가 TSMC와 삼성전자뿐인 만큼 삼성전자가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황 CEO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골드만삭스 그룹 주최 테크 콘퍼런스에 키노트 연설자로 나서 "우리는 그들이(TSMC가) 훌륭하기 때문에 사용한다"면서도 "그러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른 업체를 이용할 수도 있다(we can always bring up others)"고 말했다.
그는 '다른 업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TSMC를 제외하면 삼성전자 정도만 엔비디아의 AI칩을 생산할 역량을 갖췄다. 삼성전자에 AI 칩 생산을 맡길 수도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칩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현재 양산되는 칩으로 가장 인기 있는 '호퍼' 시리즈(H100·H200)와 차세대 칩 '블랙웰'을 모두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를 통해 생산하고 있다.
황 CEO는 이어 "(AI 칩) 수요가 너무 많다"며 "모두(모든 업체)가 가장 먼저이고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현재 TSMC의 생산능력 한계로 AI 가속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엔비디아는 대안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팹리스 입장에선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두 군데 이상으로 유지하는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펼치는 편이 생산단가를 낮추고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황 CEO는 지난 5월 대만 컴퓨텍스 행사 자리에서도 "공급망 안정성을 갖추는 일은 엔비디아에 매우 중요하다"며 "엔비디아는 삼성전자를 통해서도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으며 인텔 파운드리를 활용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말한 바도 있다.
삼성전자는 2·3나노 첨단 공정에서 가격 경쟁력과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등 기술력을 갖췄지만 이렇다 할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전류가 흐르는 채널 4개 면을 감싼 GAA는 기존의 핀펫(FinFET) 구조보다 전력 효율과 성능이 뛰어나다. 삼성전자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GAA를 적용한 3나노 양산에 성공한 바 있다. TSMC는 2나노부터 GAA 공정을 적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기업(IDM) 강점을 살려 TSMC를 추격하고 있다. 위탁생산에만 집중하는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메모리·패키징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 같은 턴키 전략을 통해 고객사 개발·생산 소요 시간을 20% 줄일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젠슨 황이 직접적으로 언급할 정도라면 TSMC 말고 첨단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게 삼성밖에 없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는 게 맞겠다"며 "삼성전자 입장에선 엔비디아가 어떤 제품을 어떤 수준에 발주할 것인지 파악해 협상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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