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1000원 빵집 문전성시
유통기한 넉넉…박리다매로 마진
전문가 "불황형 소비 대표적 사례"
11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동대문역사 내 1000원 빵집. 가게 주인인 최모씨(61)가 점심시간을 앞두고 좌판대에 빵 더미를 쏟아부었다. 지난해만 해도 최씨는 이곳에서 의류를 판매했다. 그러나 하루에 손님 한 명 받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그는 지난해 겨울부터 매장 한쪽에서 빵을 팔기 시작했다.
어느새 1000원 빵은 가게 매출 효자상품이 됐다. 최씨는 "이제는 옷 매출보다 빵 매출이 더 많이 나온다"며 "손님들이 옷 살 때는 한참을 고민하는데 빵은 주저 없이 한 봉지 가득 담아간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근 고물가로 식비 부담이 커지면서 1000원 빵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하루 평균 점심값이 1만원을 넘어서는 등 이른바 런치플레이션(점심값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하자 저렴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서울 종각역에 위치한 1000원 빵집도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유명 식품기업에서 납품받은 봉지 빵을 1000원에서 1200원 사이에 판매한다.
모두 유통기한이 넉넉히 남은 상품으로, 업체에서 대량으로 떼온 물건을 박리다매 방식으로 팔아 마진을 남긴다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빵 1개의 마진은 200원에서 300원 사이로, 목 좋은 매장의 경우 경우 하루 평균 1000개가 넘는 빵을 팔기도 한다.
종각역 내 매장에서 붕어빵을 팔던 가게 주인 현모씨(41)도 지난해 말 1000원 빵집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현씨의 매장 역시 하루 평균 100여명의 손님이 방문한다. 현씨는 "직장인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온다"며 "요즘은 1000원 빵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점포가 생겨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1000원 빵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배경에는 외식물가 상승이 있다. 통계청은 지난 6일 지난달 외식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고 밝혔다. 외식물가는 36개월 연속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점심 식사 비용도 1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모바일 식권 서비스를 운영하는 푸드테크 기업 식신에 따르면 최근 지난 1분기 전국 일반식당 점심 평균 결제금액은 1만96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만 해도 9500원대에 불과했던 점심값이 1년 사이 600원 가까이 뛴 것이다.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다 보니 시민들에게도 1000원 빵은 반가운 존재가 됐다. 외식비용의 10분의 1 가격이면 끼니를 때울 수 있어서다. 특히 대학가 앞의 1000원 빵집은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이날 성신여대 역 앞에 위치한 1000원 빵집의 경우 오전에만 20명이 넘는 손님이 다녀갔다.
빵집 앞에서 만난 대학생 강모씨(23)는 "삼각김밥이 물리면 1000원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며 "대학가 앞도 요즘은 한 끼에 1만원은 받아서 용돈이 부족할 땐 봉지 빵을 자주 먹는다. 집에서 먹을 간식용으로도 자주 사 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1000원 빵집의 인기는 불황기에 관찰되는 대표적인 소비 형태라고 설명한다. 경기 침체 시기에는 음식 등 필수 소비재를 구매할 때 저렴한 상품을 찾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얘기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황기에는 고가와 저가 상품 구매는 지속되는데, 중간대 가격의 제품 구매량은 줄어든다"며 "소비자들이 늘 소비하는 음식은 가성비 제품을 찾고, 가치 소비에 해당하는 명품은 가격이 뛰어도 계속 구매하려는 현상이 관찰된다. 일종의 소비 양극화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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