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길 현대건설 조경 책임매니저
과거 주차장만 빼곡했던 아파트 지상부
조경으로 채워진 건 2000년대 초반부터
내가 사는 집에 가치를 줄 수 있고
여기에 산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현대힐스테이트와 디에이치의 조경 상품 기획과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최연길 현대건설 조경팀장이 5일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 아너스힐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뉴욕 센트럴파크를 떠올리면 넓고 푸른 잔디밭, 그 주위를 빙 둘러싼 큰 나무들, 거기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연상되잖아요. 아파트에서도 머릿속에 남는 딱 하나의 경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사는 집에 가치를 줄 수 있고, 여기에 산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파트 조경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에서 만난 최연길 현대건설 조경 책임매니저는 단지 내 중앙광장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융단처럼 바닥을 덮은 잔디 위로 제주도 팽나무, 서산 소나무, 부여 금송까지 전국 곳곳에서 모인 수목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광장이었다. 중간중간에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까지 전시해 ‘미술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는 "내가 만약에 한남동 저택에 산다면 우리 집에 1억짜리 그림 하나는 걸어놓지 않겠어? 마당에 그냥 벤치가 아니라 작품 같은 의자 하나는 두지 않겠어? 그런 생각으로 아너힐즈 조경 콘셉트를 ‘미술관’으로 잡았다"며 "고급 주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가치를 조경으로 실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주차장만 빼곡했던 아파트 지상부가 단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조경으로 채워진 건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1980년 후반부터 강남과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가 대거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조경의 개념은 없었다. 이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꺼지자 아파트를 만들면 팔리던 시대마저 지나갔다. 건설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키워야 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 ‘브랜드 아파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현대건설에서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선보인 것도 이때다.
최 책임매니저는 "당시 아파트 내 지하 주차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이 생기면서 아파트 지상이 공원화되기 시작했다"며 "브랜드별로 ‘실개천이 흐르는 아파트’ 이런 식의 조경으로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2010년 중반부터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같은 고급 주거 브랜드들이 나오고, 조경의 중요성도 더 부각됐다.
현대힐스테이트와 디에이치의 조경 상품 기획과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최연길 현대건설 조경팀장이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 아너스힐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원본보기 아이콘최 책임매니저는 디에이치 아너힐즈 중앙광장에 있는 ‘디자이너 의자’에 관한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아파트 벤치가 너무 획일적이라 주민들도 색다른 의자에 앉아보시라고 유명 건축가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의자를 해외에서 들여와 설치했는데, 어떤 주민이 관리사무소에 "저 작품에 누가 앉아 있다"고 신고를 한 적이 있었다더라"며 "조경 책임자로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고 웃어 보였다.
요즘에는 아이들을 위한 아파트 조경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인천 송도 힐스테이트 레이크2차에 있는 '바다탐험대 옥토넛 놀이터'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최 팀장이 옥토넛 동화 원작자에 메일을 보내고, 영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연락해 협업한 끝에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는 "집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아파트 놀이터에 나갔는데 TV에서 보던 장면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만족도가 높을 거라 생각했다"며 "지금 옥토넛 놀이터는 동네 일대에서 유명 키즈카페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책임매니저는 올해 말까지는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 조경을 담당한다. 약 1만 2000세대 규모의 대단지라 각 건설사가 총 4구역으로 나눠서 조경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는 "올림픽파크 포레온 같은 경우에는 어느 건설사가 조경을 맡은 구역이냐에 따라 단지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각 건설사의 개성이 묻어나는 조경을 구경하는 것도 둔촌주공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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