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7조원→올해 8조원 성장 전망
고금리·경기 악화에 대출 상환 어려워
PF 구조조정으로 NPL 물량 증가
"올해 은행권으로부터 나오는 부실채권(NPL) 매각 규모는 연간 8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NPL 시장에 큰 장이 열렸다."
최근 만난 국내 대형 증권사 사장은 올해 NPL 시장을 이같이 전망하며 올해 급성장이 예상되는 NPL 시장에서 신사업 기회를 찾겠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으로 하반기 NPL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징후를 미리 읽고 선제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부동산 PF 사업장(230조원)의 5~10%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이란 예측이 현실화하면 하반기 NPL 시장에는 최대 23조원 규모의 PF 관련 물량이 쏟아져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의 NPL 규모는 43조7000억원으로 전년(28조1000억원)보다 55% 증가했다. NPL이란 통상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채권을 말한다. 특히 국내 NPL 주요 공급자인 국내은행 NPL 매각 물량은 지난해 4조7000억원에서 올해 8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불황과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기업이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이 시장에 대거 풀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3일 기준 3% 초반대다. 2021년 국고채 3년 금리는 1%대 초반이었다. 한국 국고채 금리 상승은 은행채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대출 등 시중금리가 오르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고금리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감당해야 할 이자금액이 늘어나 결국 부도 처리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올 1분기 국내 은행이 매각한 NPL 규모는 678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분기 규모가 3694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또 이러한 NPL 증가는 개인회생채권이나 신용회복채권 등 개인이 파산한 탓에 부실로 이어진 채권들도 상당하지만, 현재 폭발적으로 느는 NPL 물량은 부동산 PF 시장 침체에서 비롯된 게 많다.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고 브리지론 상태에서 이자만 내며 연명하던 사업장은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을 압박하면서 기존 대주단이 일부 손실을 확정 짓고 있다.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토지들을 공매에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사업성이 괜찮은 사업장은 만기를 연장하며 버티려고 하겠지만 금융당국이 금융기관들에 손절을 당부하면서 시장으로 쏟아질 PF 관련 매물들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NPL 더 활황…투자 전략 잘 세워야
금융당국이 발표한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에 따르면 증권업계는 7월 초까지 사업장별 부동산 PF 사업성을 평가해 부실 우려가 큰 PF 사업장을 골라내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당국은 국내 부동산 PF 사업장의 약 5~10%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PF 사업장 규모가 230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23조원 규모의 PF 관련 구조조정 물량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충당금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사실상 NPL은 빨리 매각하라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A증권사 PF 본부 관계자는 "증권사 대상으로 충당금 쌓는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데, 충당금 적립은 손실을 내부적으로 인식하고 NPL은 빨리 매각하라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하반기 NPL 시장에 물량 폭탄이 예상되는 가운데 증권업계에선 NPL 투자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NPL 투자는 흔히 불황을 먹고 자라는 시장이라고 말한다. NPL은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간다. 저렴하게 매물을 사서 시장 환경이 개선되면 제값에 팔아치워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셈이다.
B증권사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도 물가상승, 높아진 금리 수준,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실물 자산의 가격 조정과 가계 및 기업의 이자 부담은 각종 금융기관이 보유한 정상여신이 NPL로 발생할 확률을 높일 것이며 종국적으로 시장 매각 규모가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PF 대출을 포함한 부동산 금융시장에서도 브리지 대출이나 사업성이 좋지 않은 딜은 NPL로 시장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봤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정부에서 부동산 PF를 포함한 금융권의 자산건전성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연착륙을 위한 제반 대책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에 시중에서 예상하는 것만큼 NPL 물량이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올 하반기보다 내년에 NPL 시장이 더 활황세를 보일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리스크가 해소되고 자금 확보와 전략적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올해보다 내년 NPL 시장이 다양한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다만 이럴 때일수록 투자회사들이 얼마나 일관된 투자전략을 견지하고 실행하는지가 투자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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