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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거미집'에 갇힌 입체적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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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단조로운 코미디 연기 일관
극과 극중극 반영과 반영의 현실 외면
12년 전 '하이킥!' 투정과 삐뚤어진 본새만

"극과 극중극 연기를 구분해서 표현했어요. 서로 다른 연기의 연관성이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전자는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후자는 감정을 조금 닫은 상태에서 언행을 과장했죠."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에서 주연한 배우 정수정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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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정수정이 그린 한유림은 막 주연급을 꿰찬 젊은 배우. 김열(송강호) 감독의 요청으로 영화 '거미집'을 재촬영한다. 그는 이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다. 촬영 중이던 드라마에 피해가 불가피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비밀리에 만난 배우 강호세(오정세)와의 재회마저 못마땅해 연신 심통을 부린다.

카메라가 도는 순간 눈빛과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다정다감한 눈길과 부드러운 미소로 공장 사장을 꾀어내는 여공을 재기발랄하게 연기한다. 사장 부인에게 맞은 따귀를 악담으로 돌려주는 어려운 연기도 척척 해낸다. "이 여자는 당신도 아버님처럼 불구로 만들어 버릴 거야. 이 집안 여자들은 남자를 다 불구로 만들어!"


천연색의 한유림과 흑백의 여공은 비슷한 점이 많다. 사회적 성공을 열망하고,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과 꿋꿋하게 대립한다. 전자에게는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 후자에게는 이민자(임수정)가 연기하는 부인이 그렇다. 극과 극중극을 이끄는 매개는 모두 남녀 간 성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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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허구로 치부할 수 없는 설정이다. 극중극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참고한 흔적이 역력하다. 식모의 주인집 아들 살해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현실 속에 드리우며 시대정신을 부여한다. 증거는 김 감독이 직접 쓴 기획 의도나 인터뷰에서 발견된다.

"1960~1970년대에 가장 흔한 주변부 인물은 시골 출신의 젊은 여자들이었다. 근대화 정책으로 여자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와서 할 수 있는 일은 공장 노동자, 그렇지 않으면 식모와 버스 안내양 정도였다. 가정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나는 치정사건들은 계급이 얽혀있기 때문에 곧잘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 당시에는 남자들의 두 집 살림도 흔한 풍경이었다. 그로 인해 자식들까지 첩의 아들딸이라는 정신적 문제를 앓았다."


'거미집'의 극중극도 다르지 않다. 1960~1970년대 중산층 가정 질서의 위협을 다룬다. 공포는 가장의 몰락과 그에 따른 가정의 위기에서 분출된다. 침입자(여공)는 매개일 뿐이다.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인자를 자극해 추동한다. 김열 감독은 꿈에서 과잉 코드화된 형태로 마주한다. "며칠 동안 같은 꿈을 꾼다. 필름들이 밤마다 내 머릿속에서 영사된다. 엄청난 장면들이 생생하게 꿈속에서 재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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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다. 김열 감독은 강호세의 바람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한유림과의 은밀한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가장의 몰락을 우려한다. 현실이 투영되기는 한유림도 예외일 수 없다. 당사자인 강호세와 연기 호흡을 맞추기에 더욱 그렇다. 뒤틀리고 이상해지는 여공의 면면을 누구보다 유의미하게 그릴 수 있다. 나아가 김열 감독의 여성 왜곡이 무엇을 말하는지까지 가리킬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은 한유림의 자주적 변화를 끌어내기에도 충분하다. 영화는 거꾸로 반영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정수정이 과장해 드러나는 속내는 힘들다는 투정뿐이다. 말투 등 연기도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 등에서 여러 차례 보인 삐뚤어진 본새에 그친다. 단조로운 코미디로만 기능한다. "신경 좀 써 주세요." "너무 힘들면 얘기해." "저 너무 힘들어요. 아까부터 힘들었어요. 힘들다고 계속 얘기했어요!" "힘을 내보자, 유림아."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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