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의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 어려운 기술 용어를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과연 우리 정부와 기업이 어떤 가설 위에서 현재 상황에 대비해왔느냐다. 미국 정부가 당황하고 있듯, 한국도 이른바 ‘화웨이 쇼크’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면 그동안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본지는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 조치 후 중국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윤곽과 징후를 좇아왔다. 모든 것을 세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중국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점, 그것이 밀수의 형태든 우회의 방법이든, 중국 정부와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정황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미·중 테크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첨단 반도체가 탑재된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 발표 소식을 해석하는 건 무척 한가로운 소리로 들린다.
미국이 제재 수위를 높여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술 경쟁’과 관련해 우리의 머리에 스친 건 상반된 두 가설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고, 이것은 우리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희망스러운 전망이 하나다. 반대로 종속보다는 봉쇄를 핵심으로 하는 수출 제재는 중국으로 하여금 기술 자립 시대를 앞당길 유인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역효과만 낼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미·중 갈등이 남의 나라 싸움 구경에 그치지 않고 우리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한다면, 당연히 상정하고 대비해야 할 가설은 후자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생존 문제는 지나치리만큼 안전하고 보수적 해법으로 접근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아니기를 바라면서’ 메이트60 프로에 5G 통신을 지원하는 7나노미터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게 맞는지 증명하는 데 집중하는 건 그래서 근시안적 태도가 될 수 있다. 최종 분석 결과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한국이나 대만이 몇 년의 여유시간을 번 것에 불과한 것을 두고, 대중 제재가 실효를 거뒀다는 증거이며 결국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고 여길 바보는 없을 것이다.
새 국면을 맞은 미·중 패권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와 무관하게 우리가 견지하고 나아갈 방향은 뚜렷하다. 우리 기업들이 기술 혁신에 속도를 더 내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면밀한 외교 전략을 짜는 일은 환경 변화에 따라 그 중요성이 달라지지 않는다. 당장 이번 주 미국 상무부 관리가 방한해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연장 여부를 논의한다. 단기적으로 우리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얼마 전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이 미국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매우 무례한 발언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얻어갈 교훈도 없지 않다. 베팅은 판세를 봐가며 하는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판세를 보며 베팅할 최적의 곳을 찾는 일이 우리의 태생적 운명인가? 우리가 놀라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화웨이 쇼크가 아니라 갑자기 판세가 바뀐 줄 알고 호들갑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신범수 편집국장 겸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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