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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日 지역도시, 쇠퇴가 아닌 '적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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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日 지역도시, 쇠퇴가 아닌 '적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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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일본에 다녀왔다. 4년 만에 가는 것이어서 지인과 친구들도 만나고, 가고 싶었던 곳도 두루 잘 다녀왔다. 13년 동안 살면서 지내던 교토, 구마모토, 가고시마를 돌아본 것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구마모토와 가고시마는 아주 오랜만이라 그동안의 변화가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구마모토와 가고시마는 일본 열도 끝 규슈의 주요 도시다. 인구 73만8000명의 구마모토는 일본 도시 기준으로 ‘정령지정도시’로, 58만8000명의 가고시마는 ‘중핵시’로 분류된다.

1990년대 말에 살았으니 거의 20년 만에 찾은 구마모토는 시내 주요 상가가 그대로 있긴 하지만 아는 가게는 거의 없어졌고, 노포들도 많이 사라졌다. 물건을 파는 가게들 대신 식당이나 술집이 늘었고, 체인점들이 특히 많이 들어선 게 눈에 띄었다. 그렇다 보니 상가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접하던 이곳만의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구마모토 역 주변은 물론이고 고속버스 터미널에도 규모가 큰 상업 시설이 들어와 도시가 전반적으로 커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곳 출신 제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2016년 지진 이후 위험한 건물은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모처럼 찾았으니 살던 집도 궁금했다. 시내에서 전차를 타고 들어가는 곳으로 단독주택이 많은 동네였다. 살던 집과 이웃집 몇몇은 그대로 있긴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았고,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주변에는 다세대 주택들이 부쩍 늘었고, 주차장도 많이 들어섰다. 상가 쪽은 문 닫은 가게도 많고 활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2000년대 살던 가고시마는 10년 전에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낯선 느낌이 덜했다. 그렇지만 중앙역 근처에 높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서 예전처럼 도시의 상징 격인 사쿠라지마 화산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내 주요 상가 역시 노포들은 사라지고 체인점들이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빈 가게가 많아 활기를 잃은 듯했다. 다만 예전에는 갈 일 없던 뒷골목에 젊은 감각의 독특한 가게들이 들어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가고시마에서 살던 집은 중간에 이사해서 두 군데였다. 먼저 가본 집은 시내와 비교적 가깝고 주거와 상업 공간이 섞인 동네였는데 역시 빈집들이 보이고 베트남 식품 판매 가게가 들어와 있을 정도로 많은 이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나중에 가본 집은 시내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1970년대에 개발된 주택가였다. 인기가 없다는 게 한눈에 보였고, 빈집 역시 매우 많았다. 내가 살던 집은 누군가 사는 것 같긴 했지만, 주변은 거의 다 비어 있는 듯했다.


두 도시 모두 한편에서는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건물들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주택을 포함한 전반적인 소비가 위축되면서 자본이 탄탄한 업체나 체인점들이 지역 경제를 이끌고 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무수한 개인들은 어떻게든 특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언론에서 단정하듯 ‘쇠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적응’이라고 보고 싶다. 구마모토와 가고시마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도시였으니 지금 당장의 모습만으로 섣불리 부정적으로 전망하기보다는 가능성 쪽에 기대를 갖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토대조차 마련하지 못한 수많은 ‘신생’ 도시들이다. 변화하는 현실 앞에 과연 제대로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그 가능성 여부야말로 도시의 미래와 직결되는 지점이 아닐까.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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