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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미술관]④갤러리로 변신한 한국거래소…영감과 사유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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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복지 위해 미술품 전시…작품은 직원 투표로 결정
김혜련 “추상미술은 발명품이 아니라 발견품”
이석주 “새로운 예술은 과학에 기초해야 한다”

김혜련 작가의 작품 '정적의 소리_반구대'가 한국거래소에 전시되어 있다.) ⓒ김혜련

김혜련 작가의 작품 '정적의 소리_반구대'가 한국거래소에 전시되어 있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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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가 갤러리로 변신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1층 로비 곳곳에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미술품을 전시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해 말입니다. 한국거래소 측은 "투자 목적으로 구매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문화복지 차원에서 작품을 구매했다"고 밝혔습니다. 구매할 작품을 선정할 때 직원들의 투표를 거쳤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한국거래소의 미술품을 소개합니다~!


김혜련 '정적의 소리_반구대'

한국거래소에 출근하면 항상 마주하는 김혜련 작가의 작품입니다. 기자실로 올라가는 승강기 옆에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이 연상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방색의 추상화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예상을 벗어난 작품이었습니다.


김혜련, '정적의 소리_반구대'ⓒ김혜련

김혜련, '정적의 소리_반구대'ⓒ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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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마치 벽에 긁힌 듯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낙서와 같지 않나요? 빨간색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람 얼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노란색 작품은 가을 보리밭을 그린 것 같기도 하네요. 유화와 달리 금속 같은 재질이 느껴지고 오묘합니다. 제목을 보고 '아!'라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정적의 소리_반구대'. 반구대는 잘 알다시피 울산광역시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암각화입니다. 여러 동물과 사냥하는 모습, 기하학적인 무늬 등이 새겨진 그림입니다. 소리는 일종의 소음인데, '정적'이라니요?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작품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제목 같습니다.


김혜련 작가는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을 탐구하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다 미술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 유럽의 문화유적지와 박물관 등을 주로 다녔습니다.

문화유적지에 대한 관심은 귀국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김 작가는 2017년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본 토기에 영감을 받습니다. 새발무늬 토기의 문양이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자유롭고 모던한 문양이라니! 그때 작가는 "추상미술은 발명품이 아니라 발견품이다"라고 깨달았답니다.


한국거래소가 구입한 작품은 암각화를 재해석한 작업입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전통 색감과 추상화 형식, 낙서처럼 자유분방한 기운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김혜련 작가는 개인전에서 "현대 추상미술은 그 뿌리가 원시미술에서부터 내재한 인간 본연의 예술 충동이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대미술사의 거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티스나 고갱 역시 '원시'에 대한 동경을 작품으로 구현했지요.


숫자와 분석으로 씨름하는 한국거래소에서 김혜련 작품을 보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자본시장도 규제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러나 시장을 추동하는 힘은 '돈'을 향한 충동입니다.


이석주 '사유적 공간'


'사유적 공간', 캔버스에 오일ⓒ이석주

'사유적 공간', 캔버스에 오일ⓒ이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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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국거래소 1층 카페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한국 극사실 회화 1세대를 대표하는 이석주 작가의 그림입니다. 빨간색 표지의 낡은 책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사실적인 표현에 정물화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책 위로 나뭇가지와 새 한 마리가 보이나요?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해 그림의 주제와 대조됩니다. 책 아래는 반대로 신문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석주 작가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되 주관적인 감성을 함께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가는 "익숙한 이미지들의 비일상적 배치로 낯선 공간에서 일상적 이미지들의 본래 의미 뒤에 감춰진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의미를 사유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작품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의 주제인 책에 적힌 글은 독일어입니다. 큰 글씨(D?rer)는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를, 작은 글씨(Das Graphische werk)는 독일 쾰른에서 열렸던 전시회를 의미합니다. 그림의 주제인 책을 중심으로 하단은 실제(현실)를, 상단은 무의식(주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 출신으로 북유럽 특유의 르네상스 회화를 구축한 인물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천착했다면, 뒤러는 이성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작가입니다. 남아있는 그의 인체비례 연습물을 보면 수학 작업 같습니다. 그가 "새로운 예술은 과학에 기초해야 한다.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건축적인 과학 같이 수학에 기초해야 한다"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독일은 서구 지성사에서 철학의 근본으로 불리는 국가입니다. 칸트, 피히테, 셀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사는 근대 서양 철학사로 대표됩니다. 이석주 작품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제(책)를 낯설게 그려냄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작품을 보면서 한국거래소가 위치한 여의도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식·선물·옵션시장은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시장 논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때로 욕망과 감정이 뒤엉키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여의도를 금융 도시 대신 '욕망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한국거래소를 방문하게 되면 여유를 가지고 그림도 천천히 즐기시길 바랍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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