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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의 금융라이트]SVB는 어쩌다 파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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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으로 美국채 투자한 SVB
금리 오르면서 채권가치 급락
고객에 예금 돌려주다 손해 ↑
'돈 부족' 소문에 뱅크런 터져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지난 10일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전 세계에 금융 불안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여파를 차단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죠. 미국에서 16번째로 덩치가 컸던 SVB는 어쩌다 문을 닫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고객 예금으로 美국채 투자한 SVB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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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SVB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SVB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은행입니다. 일반은행이랑은 성격이 조금 다른데요. 대국민 영업을 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합니다. 해당 지역에서 스타트업의 예금을 유치하면서 확 성장했고, 2500개 이상의 벤처캐피탈과 헬스케어·테크 스타트업의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었죠.

이렇게 큰 은행이 무너진 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커지고 예대마진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득을 봅니다. 그런데 금리가 너무 오르게 되면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SVB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사도 잘 안되고, 대출금리도 너무 높으니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돈을 빌리러 잘 오지 않으면서 수익성이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SVB는 스타트업 고객들이 맡겨놓은 예금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매도가능증권(AFS)이라는 상품을 샀는데, 만기 전에 매도할 의도로 구매하는 증권상품입니다. SVB는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AFS를 마구 사들였습니다. 위험할 건 없다고 생각했겠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망하지만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은행들 역시 이미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었고요.


금리 오르자 채권가치 급락…손해만 18억달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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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자금이 부족해진 스타트업들이 SVB에 맡겨 놓은 예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돈이 부족해지면 은행의 예·적금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잖아요? 스타트업들도 똑같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꺼내 필요한 곳에 쓸 생각이었죠.

하지만 SVB는 현금이 없었습니다. 고객들의 예금으로 미국 국채를 샀거든요. 미국 국채를 다시 팔아서 현금을 마련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SVB도 사들였던 미국 국채를 다시 매도한 뒤 스타트업들에게 예금을 인출해줬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금융시장과 스타트업들은 SVB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지 깨닫지 못했죠.


사실 SVB는 미국 국채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손해를 봤습니다. 금리가 너무 올라버렸거든요.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채권은 금리(수익률)가 낮으면 채권가치가 높고, 금리가 높으면 채권치가 낮습니다. 1년 후 120만원을 돌려주는 채권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시중금리가 20%라면 이 채권가치는 아마 100만원쯤이겠죠. 그런데 금리가 30%로 오른다면 사람들은 이 채권을 90만원에 거래할겁니다. 금리가 20%에서 30%로 오르니 채권가치가 100만원에서 90만원으로 떨어졌죠.


즉 SVB가 고객예금으로 미국 국채를 샀을 때는 금리가 낮았는데(채권가격이 비쌌는데), 예금을 돌려주기 위해 미국 국채를 팔 때는 금리가 급등(채권가격이 급락)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판 셈이죠. 이렇게 SVB가 손해 본 금액은 18억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돈으로 못해도 2조원이 훌쩍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죠.


'SVB 돈 없다' 소문나자 뱅크런 터져
지난 13일 한 SVB 은행 지점에 고객과 주주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지난 13일 한 SVB 은행 지점에 고객과 주주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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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SVB가 곧바로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SVB는 이 손해를 메우기 위해 유상증자에 나섰습니다. 유상증자란 기업이 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걸 말합니다. 한 마디로 SVB가 돈을 받고 주식을 더 찍어내려 했다는 뜻입니다. 주주들은 당연히 SVB가 왜 유상증자를 하려는지 궁금했겠죠.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SVB에 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해당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주가는 급락했고 은행에 돈을 맡겼던 기업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예금인출을 시작했습니다. ‘뱅크런’이 벌어진 겁니다.


결국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SVB를 폐쇄했습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고요. 17일 SVB의 모기업이었던 SVB파이낸셜그룹은 파산보호를 신청합니다. 파산보호란 법원의 승인을 받아 기업의 채무이행을 일시 중지하고 자산매각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하는 절차입니다. 주요외신에 따르면 SVB의 부실자산 규모는 600억~1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자회사 은행이 붕괴하면서 워싱턴 뮤추얼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이래 최대 규모입니다.


금리인상과 별개로 위험신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은행이 덩치를 빠르게 불리고 고객 예금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섰는데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거죠. 실제로 지난해 말 SVB는 연준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빌린 은행이었습니다. 연준은 보통 최후의 유동성 확보수단으로 불리는데 SVB 상태가 이때부터 안 좋았다는 걸 의미하죠. 엄격한 금융감독을 받는 기준이 자산 500억달러 이상에서 2500억달러 이상으로 완화된 점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기준이 높아지면서 SVB는 깐깐한 감독을 피할 수 있었거든요.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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