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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하려…'강제노동' 쏙 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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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체 역사 중 300년만 한정
"조선인 강제노동 시기는 배제한 것"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류 미비로 인한 재신청 과정이 있었지만 조선인 강제 동원 역사는 제외하는 전략을 고수한 것이 확인됐다.


9일 사와다 아쓰시 니가타현 세계유산등재추진실장은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사도광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전통적 금 생산 기술과 체제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태평양전쟁 중의 역사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가치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사도광산에서 에도 시대 당시 금이 대량으로 생산돼 세계유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은 숨기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일본은 사도광산에서 에도 시대 당시 금이 대량으로 생산돼 세계유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은 숨기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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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현과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명칭을 '사도섬의 금산(金山)'으로 정했다.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에도시대(1603~1867)의 금 생산으로 한정한 것이다.


사와다 실장은 "사도광산에서는 독자적인 전통 수공업 방식으로 세계 최고 품질의 금을 최대 규모로 생산했다"고 말하며 이를 뒷받침한 자료로 에도 막부에 봉납한 세금을 분석한 1956년 후모토 사부로의 '사도 금은산(金銀山) 사화(史話)'를 제시했다. 이 자료를 통해 16020~1640년 무렵 사도섬에서 연간 1~2톤의 금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도광산의 역사는 1601년부터 1989년까지로 400년 가까이 이어져왔지만 일본정부는 그중 16세기 이후 약 300년간만 세계유산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유산이 지닌 전체 역사를 외면하는 행동은 조선인 강제노동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한편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신청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이에 관련해 사와다 실장은 "외교와 관련된 문제는 국가가 적절히 대응 할 것"이라며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문화영 인턴기자 ud366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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