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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러 동맹 위해 보낸 선물 127년 만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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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민영환 참석해 전달
예술품 열일곱 점으로 환심 사려 했으나 실패
'흑칠나전이층농'·장승업 '고사인물도' 두 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복원 지원해 전시 성사

1896년 5월 26일 세계의 눈은 모스크바에 쏠렸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세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청나라는 실권자였던 이홍장(1823~1901), 일본은 메이지 정부 총리를 두 번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1922)를 보냈다. 조선은 민영환(1861~1905)을 대표로 파견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망국(亡國)의 슬픔을 죽음으로 달랜 순국 지사다. 러시아 외무대신 로바노프를 만나 군사·경제 동맹 체결을 요청했다. 청나라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고종(1852~1919)의 특명이 있었다. 제안은 수락되지 않았다. 러시아 장교·병사 약 열 명을 파견해 조선군대를 양성해준다는 약속을 얻는 데 그쳤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뛰어든 상황에서 협상의 지렛대가 있을 리 만무했다.


고종이 러 동맹 위해 보낸 선물 127년 만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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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동맹은 국력이 비슷한 나라끼리 맺는다. 괜히 약소국이랑 맺었다가 분쟁이 생기면 독박을 쓸 수 있다. 바람 앞의 등잔불이나 다름없던 고종은 사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러시아 수비대의 보호가 절실했다. 조선 공예·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품 열일곱 점을 선물해 환심을 사려 했다. '흑칠나전이층농'과 '발(簾)', '등메석(登每席)' 등이다. 현재 모스크바의 크렘린박물관과 국립동양박물관에서 나눠 소장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예술품 다섯 점이 127년 만에 베일을 벗는다. 오는 9일 크렘린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특별전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를 통해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20년 '흑칠나전이층농' 복원예산을 지원해 러시아 황실의 무기, 보석과 함께 전시 목록에 포함됐다. '흑칠나전이층농'과 장승업(1843~1897)의 '고사인물도' 두 점, '백동향로' 두 점이다. 니콜라이 2세에게 전달한 고종 선물의 실물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민영환을 수행해 대관식에 함께 참석한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이름 정도만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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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흑칠나전이층농'이다. 고종의 특명으로 당대 가장 뛰어난 나전 장인이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농 하단부에 나전 십장생(十長生)을 부착해 니콜라이 2세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제작에는 1920년 일본에서 '실톱'이 도입돼 유행한 '끊음질(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잘라 문양을 제작하는 방법)' 기법이 적용됐다. 곽동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선임은 "성행하기 약 30년 전에 월등히 반영돼 공예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평가했다.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두 점은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와 '취태백도(醉太白圖)'다.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대작들로, 모두 크기가 174㎝를 넘는다. 전자에는 노자가 청우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을 나서기 전에 윤희(尹喜)와 대화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윤희는 노자에게 도(道)에 관해 묻고 노자는 그 질문에 대답한다. 이를 정리한 책이 '도덕경(道德經)'이다. 후자에는 관복을 입고 만취한 이태백의 곯아떨어진 모습이 담겼다. 각 작품에는 '朝鮮(조선)'이라는 국호가 '吾園 張承業(오원 장승업)' 서명 앞에 붙었다. 곽 선임은 "장승업 작품 가운데 처음 확인되는 희귀사례"라며 "외교 선물을 전제로 창작됐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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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향로'는 사각과 원형 기형으로 구분된다.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하며 천원지방(天圓地方)을 가리킨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지다'라는 뜻으로,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했다. 특히 길상 문자를 기준으로 직선과 유려한 곡선을 조화롭게 융합해 투조(透彫)한 문양 구조는 일반 공예품에서 보기 힘든 얼개다. 사각 향로 노신(爐身·향로나 화로의 몸체)에는 '향기로운 연기가 서리다'라는 뜻의 '향연(香煙)', 원형 향로 노신에는 '참다움과 장수, 영원한 보물'을 의미하는 '진수영보(眞壽永寶)'가 각각 새겨졌다. 하나같이 대관식을 축원하는 글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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