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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역사]④ 박정희의 실패한 프로젝트 ‘뉴코리아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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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박정희 지시로 부평공업단지에 설립
3년 만에 부실화 되면서 아남전자에 인수돼

[아시아경제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대한민국 반도체의 역사는 1974년 1월 26일,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주식회사(이하 한국반도체)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은 자서전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고려원.1996)에서 “반도체의 미개지(未開地)에 최초의 본격적인 반도체공장을 설립한 것이 강기동 박사의 한국반도체였다”고 기록했다. 한국반도체는 이후 삼성으로 넘어가 삼성반도체가 됐고 오늘날 삼성전자로 이어진다.


1960~1970년대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던 시대였다. 최고통치자가 사업 시작 여부를 기업에 정해줬다. 정권의 눈 밖에 나면 기업 활동을 영위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때로는 청와대가 직접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때는 그랬다. 반도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이른바 ‘한국형 반도체 사업’을 추진했다. 1970년 전후 한국의 상황에 대해 강기동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한국에는 반도체 헤더(실리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는 케이스) 공장이 많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헤더 자체가 너무 비싸고 노동집약적인 데다가 새로운 플라스틱 용기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업을 극동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 유행이었다. 한국에 헤더 공장이 많이 들어오자 정부는 이를 성장업종으로 지정하고 세계 제일의 헤더 공장 건설을 목표로 미국 기술자를 영입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반도체 하면 조립업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헤더 제조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1966년 7월 7일 열린 전국 상품 전시회에 참석해 전시품목을 관람하고 있다(사진 e영상역사관)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1966년 7월 7일 열린 전국 상품 전시회에 참석해 전시품목을 관람하고 있다(사진 e영상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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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뉴코리아전자 설립하며 '한국형 반도체 사업' 추진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한국에는 20여 개 업체들이 반도체 사업을 한다고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삼성물산, 한진상사, 금성사, 대한전선, 민성전자, 아남산업 등이었다.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청와대가 주도해 회사를 만들었다. 인천 부평공업지구에 세워진 ‘뉴코리아전자’였다. 1968년 7월 열린 이 회사 준공식에는 박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1969년 4월 12일자 조선일보 보도는 이 회사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관심을 보여준다. ‘(부평지구 공업단지를 방문한)박정희 대통령은 공업단지 안에 있는 뉴코리아전자의 김인 사장으로부터 현황을 보고 받고 통신 편의를 제공해 줄 것과 150만 달러의 외화를 대부해 줄 것을 관계관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뉴코리아전자는 김병준 기술 이사가 미국 회사인 베리트론 웨스트사에 근무할 때 얻은 기술을 도용했다는 특허 시비에 휘말렸다. 유죄판결을 받아 김 이사가 5백만 달러를 물게 되면서 뉴코리아전자의 미국 판로가 막혔다. 전자공업용 질소를 생산하며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경북도지사를 지낸 사장 김인 씨 마저 공화당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하면서 회사에서 손을 뗐다. 뉴코리아전자는 산업은행 관리 하에 들어갔고 청와대는 결국 이 회사를 아남전자에 떠넘기기에 이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최첨단 반도체 산업이라며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업은 이렇게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김향수 아남산업 창업자 “청와대 권유로 뉴코리아전자 인수”

아남전자가 뉴코리아전자를 인수한 과정과 관련해 김향수 아남산업 창업자는 <경향신문> 1993년 5월 10일자 ‘나의 기업인생’에 이렇게 증언했다.


‘뉴코리아의 인수는 자의가 아니었다. 청와대의 권유 때문이었다. 1971년 2월 청와대에서 돌연 나를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재벌기업인도 아닌 나를 만나자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튿날 청와대게 가니 김정렴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실장은 대뜸 뉴코리아전자를 인수하라고 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는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뉴코리아전자에 대해 설명했다.


“1968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방상 중요한 반도체 소자재인 헤더 생산을 위해 설립됐다. 기술부족 경영 문제로 인해 부실화돼 조업중단 돼 있으며 산업은행 관리 하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 회사 임원은 회장에 호남정유 회장이던 서정귀, 사장에 경북도지사를 지낸 김인, 기술 담당 이사에 김병준과 컬럼비아대 전자공학과 교수이던 김완희 등이었다.


김 실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사업을 하는 내가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나는 망설였다. 반도체에 무지한 상태이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밖에 안 된 아남이 짐을 더 하나 올려놓는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한편으론 국가원수가 세우게 한 기업이 이처럼 부실화되니 보필하는 분들이 얼마나 고민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어려움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인수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7개월 간 실사 이후 1971년 9월 7일 청와대 비서실에서 김용환 비서관과 심원택 이사 나 세 사람이 만나 인수합의서를 작성하고 11월 4일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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