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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연말연시 대리운전 모범 이용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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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연말연시 대리운전 모범 이용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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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대리운전을 하며 만난 그는 무척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손님 중 가장 모범이라 할 만했다.


1) 자신이 출발할 장소를 나에게 문자로 미리 보내 주었다. "OO주차장 지상에 있는 하얀색 OO자동차입니다." 정확한 위치와 자신의 차종을 미리 알려준다면 금방 서로를 찾을 수 있다.

2) 만났을 때 나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 줬다. "김민섭 기사님, 안녕하세요!" 앱의 기사 정보를 본 모양이었다. 기사님, 사장님, 선생님, 아저씨, 저기요, 여러 호칭이 있었으나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3) 집의 정확한 주소와 함께 내비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내비게이션에서 우리집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거치대도 편히 사용하시고요." 주소가 OO동까지만 명시돼 있는 일이 많아 다시 물어야 한다. 내비나 거치대를 사용해도 될지를 알려준다면 서로 편하다.


여기까지가 지난 글에서 쓴 내용의 요약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4) 팁에 대해 말했다. "기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직장 동료에게 현금을 줄 일이 있어서 지금 팁을 드릴 현금이 전혀 없네요. 뽑아두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정해진 요금만 주시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건 주시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많은 팁을 받은 것처럼 감사하다고, 편안히 집까지 모시겠다고 말씀드렸다. 정말로 몇만 원의 팁을 받은 것보다도, 당신의 노동을 존중한다고 하는 듯한 그의 태도가 더욱 고마웠다.


5)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님, 네 저 곧 들어가요. 곧 봐요." 여보님, 이라니. 애인에게 먼저 전화하고 집에 들어가기 불과 몇 분 전 "나 다 왔어." 하고 전화하는 게 고작인 사람들도 있는데. 애인-친구-직장, 이렇게 전화를 할 만큼 하고 마지막에 찾는 곳이 집인 사람들이 더 많은데, 그가 유일하게 전화한 대상은 자신의 아내였다.


6) 조용히 자기계발을 했다.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해 룸미러로 살펴보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수면, 유튜브 감상, 멍하니 있기, 여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데, 그는 그 짧은 시간에도 공부를 했다.


7) 자신이 주차하겠다고 말했다. "기사님, 입구에 세워주시면 제가 들어가서 주차하겠습니다." 종종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차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게 해 주려는 배려일 것이다. 사실 피크타임이라고 할 밤 시간의 몇 분은 그대로 돈이다. 나는 그에게 그러시면 안 된다고 그의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여전히 팁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그를 뒤로하고 나왔다.


다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자신은 없다. 이 일을 수백 번 넘게 하면서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였으면서도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그를 위한 태도를 보내왔다. 그가 자꾸 생각나는 건 그런 어려운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운전은 대리를 맡겼을지라도 자신의 삶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주체적이었다. 몇만 원의 팁보다도 받기 어려운 한 사람의 격을 보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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