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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수첩]법망 피한 스토킹, 피해자만 아는 무서운 글

최종수정 2022.12.04 11:36 기사입력 2022.12.04 11:36

1년간 피해 신고 2만9천건, 솜방망이 처벌 여전
비슷한 가해 상황 두고 재판부 유·무죄 엇갈린 판결
여성계 "스토킹 처벌 범위 더 확대해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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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범죄도 늘고 있다. 피해자만 알 수 있는 협박성 글을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로 하는 등 이른바 간접 스토킹을 하는 식이다. 일부는 피해자 대신 지인을 괴롭히기도 한다. 여기에 스토킹처벌법 입법 취지가 무색한 판결도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통해 처벌 범위를 더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1일 경찰과 한국여성의전화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1년간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신고 건수는 2만90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법 시행 전 3년간 경찰이 접수한 1만9000건보다 1.5배가량 많은 수치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스토킹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높아져,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다 보니 범행 수법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직접 피해자를 지속해서 괴롭혀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을 피해가는 식이다. 예컨대 가해자가 피해자만 알 수 있는 무서운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두거나, 피해자의 지인을 괴롭히는 등 간접 스토깅을 한다. 그런가 하면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그의 직장에 전화해 출근했는지 계속 확인하는 방법도 교묘한 스토킹 수법 중 하나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최근 스토킹범들은 처벌을 최대한 피하려는 목적으로, 범행 자체를 교묘하게 하고 있다면서, 처벌 범위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40대 피해자는 스토킹 범죄 요건에 해당하는 지속성에 대해, 아예 처음 범행부터 스토킹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피해자는 스토킹 행위가 지속해서 반복될 경우 피해자는 결국 스토킹 피해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솜방망이 처벌 여전…과거 '연인' 사이 감형 사유도

이렇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범죄자들이 그나마 재판에 넘겨졌더라도, 사실상 이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결은 6건 중 1건에 불과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스토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 95건을 대법원에서 받아 전수 분석한 결과,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한 사건은 16건(16.8%)에 그쳤다. 일부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과거에 사귄 사이였다는 사실을 감형 이유로 제시하거나 스토킹 기간이 짧은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보기도 했다.


여기에 집요하게 걸려오는 부재중 전화가 스토킹 범죄인지 아닌지를 두고 재판부마다 다른 결론을 내놓고 있어 논란이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선례가 없다보니 재판부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천에서는 스토킹처벌법이 없던 17년 전 판례를 근거로 스토킹 사건을 해석하고,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스토킹처벌법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 판결이라며 즉각 항소했다.


먼저 한 사건을 살펴보면, 지난 8월부터 한 달 반 동안 전 연인에게 29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고, 30번 넘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40대 남성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전화 대부분을 무시하거나 수신을 차단했어도 집요한 연락에 공포심을 느꼈을 거라고 해석했다.


비슷한 가해 상황이지만 다른 판단도 있다. 지난 3월부터 석 달 넘게 발신자 표시 제한 기능을 이용해 전화를 걸고, 4시간 동안 10번 연속 전화를 한 50대 남성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남성은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법원 통보 이후에도 계속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전화' 스토킹 처벌 될 수 있을까

두 판결이 무죄와 유죄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부재중 전화를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 해석의 차이로 보인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전화나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글이나 말, 음향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부재중 전화의 흔적을 '글'이 도달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벨소리 그 자체만으로는 음향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논란이 되는 '음향'과 관련해 2005년 대법원은 전화기 벨소리는 '전화기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법에서 금지한 '정보통신망을 통해 상대방에게 도달한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 기준을 세웠다.


문제는 위와 같은 정보통신망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비슷한 두 사건이 유죄와 무죄로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계속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오거나, 미행해서 집을 찾아오거나 하는 스토킹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새로 만들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 기준에 따른 정보통신망법 위반 처벌은 '집요한 전화'가 아니라 전화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욕설 등)이다. 이렇다 보니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셈이다.


'부재중 전화' 사건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실제 판결문에서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다"며 2005년 선고한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는 스토킹법이 아예 없어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반복된 전화 등 스토킹과 유사한 행위를 처벌하던 시기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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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발신 행위 처벌…스토킹법 입법 취지에도 부합" 검찰, 항소

상황이 이렇자 법원 판결에 항소한 검찰이 이례적으로 설명자료까지 내고 적극적인 처벌을 강조했다.


인천지검은 지난 8일 설명자료를 통해 최근 스토킹처벌법 등 혐의로 기소한 A(54·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검찰은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법리를 오해했다며 불안감을 주는 반복된 전화를 상대방이 받지 않았더라도 발신자를 스토킹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원이 무죄 근거로 든 판례인 정보통신망법은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스토킹법은 정보나 의사 전달 여부와 관계없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주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달'은 상대방의 지배권 내에 들어가면 충분하고 실제 인식까지 필요하지는 않다"며 "'벨 소리'나 '발신 전화 표시'도 스토킹법상 부호나 음향 등의 도달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토킹법은 피해자 인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만 해도 스토킹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전화만 피해자가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또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행위는 전형적인 스토킹 유형"이라며 "피해자는 부재중 전화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심과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반복된 발신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스토킹법 입법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전문가는 스토킹처벌법 입법 취지 등 피해자가 받는 고통에 대해 사법부가 전반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재판부가 스토킹 피해자들에 대한 인지 감수성이 낮아보인다고 볼 수 밖에 없다"면서 "(벨소리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에게 내가 지속해서 스토킹을 당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판결은 항소를 통해 조정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판사 출신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현재 법원 판결은 스토킹 행위의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가중처벌 조항을 제정하거나 스토킹의 다양한 양상에 따라 법정형을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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