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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IBS '예미랩'…1천m 땅 속에서 노벨상 캐는 '지하 천문대'

최종수정 2022.10.07 14:55 기사입력 2022.10.06 07:47

3분에 걸쳐 지하 600m까지 하강, 카트로 1000m 예미랩 향해
암흑물질, 중성미자 등 우주 기본물질 규명 나서
NASA도 연구 협력하자 연락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 LSC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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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첩첩산중, 지하 1000m 땅속 깊은 곳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깊고 더워 숨이 잘 쉬어지기는 할까? 살짝 겁을 먹은 채 지난달 29일 강원도 정선의 초거대 지하실험실 '예미랩'을 방문했다. 무엇보다 첨단 공조 시설과 뻥 뚫린 넓은 터널이 공황장애 걱정을 싹 씻어줬다. 이곳은 한 마디로 석탄ㆍ철이나 핵실험장이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캐내는 곳이었다. 경외심마저 생기는 이색 체험이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의 출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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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는' 지하 1000m 여행

강원도 정선 예미산 기슭, 맑고 편안한 초가을 날씨와 달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전 처음 지하 1000m 터널에 들어가려니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이곳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민간 광산업체인 한덕철광의 갱도 옆에 조성한 최첨단ㆍ초정밀 지하 실험 시설 '예미랩'이 위치해 있었다. 입구인 수직 600m 갱도에는 80억원을 들여 설치한 독일산 광산용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실어 날랐다. 안내원이 "이것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케이지'라고 부른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즉시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겁이 더 났다. 일부러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케이지'는 지하 600m를 일반 승강기의 4배인 초속 4m로 빠르게 내려갔다. 3분이 채 안 걸렸다. 높이 555m로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의 고속엘리베이터와 맞먹는 속도다. 드디어 지하에 도착했지만 다행히 공황장애나 폐소공포증은 도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예미랩까지 계속되는 갱도는 답답하기는커녕 시원하고 청정한 느낌을 줬다. 넓이 10m 이상, 높이 15m 이상의 널찍한 터널로 이뤄져 비좁음을 느낄 틈이 없다. 차량 두 대가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뻥 뚫려 답답한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첨단 공기 공급ㆍ온도 조절 장치를 갖춰 항상 섭씨 26도를 유지하고 산소 포화 농도도 지상과 동일한 24.1%로 조절한다고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 내부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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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가 제공한 전동 카트를 타고 예미랩까지 100m가량을 더 내려갔다. 내리막길은 약 12%의 경사가 있어 가팔랐다. 마침내 지하 1000m 깊이에 도착했다. 예미산 해발고도가 998m라니 바다보다 더 깊이 들어 온 셈이다. 길이 1000m의 일자형 긴 터널에 양쪽에 3000㎡ 넓이의 10여개의 각종 실험실과 휴게소ㆍ대피장소까지 배치된 구조다. 모든 연구 시설의 벽면에는 방사선 차폐가 가능한 특수 콘크리트(숏크리트)가 칠해져 있었다. 이런 곳에서 급한 '볼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궁금하던 차, 터널 중간에 호주업체가 제작한 광산용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조그만 컨테이너 같이 생겼지만 냄새와 오염 물질 배출없이 관리할 수 있는 청정 시설이라고 한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 통로에 놓여 있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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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지하 1000m '동굴 탐방'을 시작했다. 왜 이곳일까? 안내를 맡은 박강순 IBS 책임기술원은 지질이 안정됐고 공사가 상대적으로 쉬우며 예산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지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곳은 지질의 특성상 지하 1000m 이하에서 검출되는 자연방사능이 현저히 낮아 각종 실험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또 지하수가 적어 공사도 상대적으로 쉽고 비용도 줄었다고 한다. 보통 시간당 200t이 나와 애를 먹지만, 이곳에선 3~4t밖에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 지상의 지형도 공사 구간을 최소화해서 1000m 이상 깊이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한덕철광과 출입구인 수직갱도 600m를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비용을 대폭 감축할 수 있었다. 박 책임기술원은 "삼척 등 여러 곳을 검토했지만 반대를 많이 해서 어려웠다. 이곳도 처음에 철광 측이 반대했지만 나중에 입장을 바꾸면서 가능해졌다"면서 "총 35년간 지상권을 설정하는 대신 소정의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출입구를 공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세계 최대의 지하 실험실인 이탈리아 그랑사소 지하실험실이 지나치게 높고 넓게 굴착되면서 비용이 낭비된 반면, 예미랩은 적당한 높이와 효율적 설계로 굴착비용(1㎥당 700만원)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또 터널 양쪽에 실험 공간을 배치할 때도 만약의 경우 화재ㆍ폭발 사고가 나더라도 화염과 잔해를 피해 대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혹시나 모를 붕괴 사고도 철저히 대비했다. 40명이 3일간 전기는 물론 식수ㆍ산소ㆍ물 등 모든 지원이 끊겨도 생존할 수 있는 안전 대피소도 구축됐다. 이곳도 호주 광산 전문 업체의 첨단 설계로 산소 공급량이 인원에 맞게 자동 조절되는 등 안전을 극대화했다. 박 책임기술원은 "3일은 일반 광산에서 붕괴 사고 발생 시 구조를 기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며 "평상시에는 휴게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위급 시 생존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에 조성된 안전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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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비밀을 캐낸다

IBS는 이곳에서 우주를 이루고 있는 기본 물질로 알려졌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암흑 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한다. 지하 1000m 터널 위의 두꺼운 지반은 일종의 방사선 차폐막이다. 우주나 지상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주선ㆍ자연방사선을 차폐한 후 검출을 원하는 암흑 물질ㆍ중성미자의 신호(빛)를 잡아내는 게 목표다.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지하 1000m에서는 방사선이 지표면 대비 우주선 차단율이 10의 마이너스 6승, 즉 백만분의 1로 우주선을 차단하면서 실험에서 배경신호(방해신호)의 대부분을 차단한다"면서 "우주선 효과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지하로 깊이 들어갈수록 유리하다. 또 터널 자체에서 나오는 방사능 수치도 다른 실험실에 비해 현저히 낮아 일본의 가미오칸데와 비교하면 약 100배 정도 더 낮다"고 설명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의 아모레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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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IBS는 이곳에 아모레홀, LSC홀 등 두 개의 대형 실험실을 조성했다. 다른 곳들이 1층 건물이라면 이 두 실험실은 2~3층 건물일 정도로 규모가 컸고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미 아모레홀엔 양양 지하실험실에서 운영 중이던 AMoRE-1 검출기가 옮겨와 업그레이드(AMoRE-2)된 후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었다. 둥그런 몰리브덴-100 결정판이 핵심 부품인데, 순수물이 담긴 수조 등 5겹의 차폐막과 신호 감지 전자 장비를 갖췄다. 차폐막을 통해 우주선ㆍ자연방사선을 최대한 걸러내고 원하는 암흑물질이나 중성미자의 신호만 잡아내기 위해서다. 이 실험의 공식 명칭은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 연구(AMoREㆍAdvanced Mo-based Rare process Experiment). 중성미자는 현재까지 우주 구성 물질로 알려진 12개 기본 입자 중 하나다. 아직까지 전자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등 3개만 발견됐다. 김 단장은 "매우 드물게 핵분열시 양성자가 중성자로,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는 베타 붕괴가 두 번 일어나면서도 중성미자를 방출하지 않는 이중 베타붕괴가 관측된다"며 "이중 베타붕괴의 반감기를 측정해 중성미자의 절대 질량을 파악하고 이것이 기존 예측된 '마요라나 페르미온' 입자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중성미자는 우주 대폭발(빅뱅) 직후 우주에서 만들어진 물질ㆍ반물질 중에 어떻게 물질만 비대칭적으로 남아 현재의 우주를 구성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열쇠"라며 "중성미자의 질량과 4번째 중성미자 및 반(反) 중성미자의 존재 여부를 알아내는 게 연구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이 연구에는 현재 캐나다 서드베리 중성미자 관측소의 '스노렙(SNOLAB)', 일본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의 '수퍼-가미오칸데(Super-Kamiokande)', 이탈리아 그랑사소 국립연구소의 '보렉시노(Borexino)'등 세계적 지하연구시설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었지만 수십년간 아직까지 관측한 사례가 없다. IBS 지하실험 연구단은 2018년 이탈리아 연구팀이 발견한 암흑물질 유력 후보 '윔프(WIMP,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 입자'가 97% 이상의 확률로 암흑물질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 물리학계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 책임기술원은 "연구를 서두르기 위해 다른 곳의 굴착이 진행되는 와중에 진동을 막기 위해 천정 한 쪽에 구멍을 뚫고 설치 작업을 해야 했다"며 "검측기의 모든 부품들도 자연방사선 방출이 가장 적은 재료들로 직접 제작해 우리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더 빨리 결과물을 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고심도 지하연구시설 '예미랩' LSC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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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방문한 곳은 LSC홀, 즉 예미랩의 가장 핵심 시설인 차세대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가 설치될 예정인 곳이다. 이곳 실험실 중에 가장 큰 규모로 20m 넓이에 높이가 총 28m가 넘는 대형 동공이 이중 구조로 구축돼 있어 장대한 느낌마저 들었다. LSC는 무려 2500t의 액체섬광물질과 양성자 가속기, 선형가속기까지 갖춰 세계 입자물리학계의 숙원인 암흑물질을 찾는 코사인(COSINE) 실험을 진행하도록 구축된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약 26%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 관측된 적이 없다. 윔프(WIMP), 액시온(AXION), 미활성 중성미자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작은 입자들을 뭉치게 해 최초의 별을 만드는 등 우주의 탄생과 생명체의 존재를 가능케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김 단장은 "지구로 날아온 암흑물질과 검출기 내 결정(아이오딘화나트륨ㆍNaI)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광자의 신호를 분석해 암흑물질을 찾을 예정"이라며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하면 근거리에서 갓 만들어진 중성미자의 특성을 연구할 수 있게 되며, 선형가속기를 활용해 암흑광자를 만들고 암흑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뜻밖의 인기

예미랩은 당초 IBS가 구축 계획을 밝혔을 때만 해도 "그런 곳을 어디다 쓰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너도 나도 입주를 원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벌써 10여개의 실험실이 모두 입주 예약이 끝난 상태다. 먼저 기상청이 실험실 하나를 빌려 지진관측 장비를 설치해 놓은 상태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표준연구원, 경북대 등도 입주할 계획이다. 또 미국 중성미자 연구그룹(IsoDAR)에서도 공동 연구를 제안했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수직 600m의 입구 터널에서 자유 낙하시 생명체의 반응을 연구하고 싶다며 협력 요청을 하는 등 국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예미랩 공사 전반을 책임졌던 박 책임기술원은 "다른 곳에서도 몇십년째 관측을 하고 있지만, 장비가 낡았고 방사선 차폐 능력도 떨어져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3년 내 검측 성과를 내고 10년 내 노벨상을 탔으면 좋겠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한편 세계적으로도 지하 고심도에 대규모 실험시설을 갖춘 연구 시설들이 다수 운영되고 있다. 이탈리아 그랑사소 연구소는 지하 1400m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실험실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가로 100m, 세로 20m, 높이 18m로 이뤄진 실험공간 3개, 우회터널까지 합치면 총 면적이 18만㎡(약 5만5000평)에 달한다. 미국 샌포드 지하연구시설도 1478m 땅 속에 위치해 있으며 검측 결과로 노벨 물리학상을 2회나 수상했다. 캐나다 서드베리 관측소는 2300m 지하(노벨 물리학상 2회) 일본 가미오칸데는 1000m 지하(노벨 물리학상 2회), 중국 진핑지하실험실은 무려 2400m 지하에 실험동을 조성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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