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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사망 애도하던 日국민들, 국장 반대로 돌아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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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의식 결여 원인으로 지적
국장 필요성 공감대 형성 안돼
정치권, 국민 설득 노력 미흡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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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오는 27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거행을 두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시민단체가 주관한 국장 중단 시위에 4000명이 참석한 한편 21일에는 70대 남성이 국장 반대 의사를 담은 문서를 남기고 분신을 시도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지난 7월 아베 총리가 총격에 피습돼 사망할 당시 일본 전역에도 애도 물결이 일었던 점을 상기하면 이런 분위기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 내 전문가들은 국가와 일체감이 사라진 사회 분위기와 정치권의 미흡한 설득이 여론의 극심한 반발을 야기했다고 분석한다.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17~18일 전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하는 응답이 62%로 찬성(27%)의 두배를 뛰어넘었다. 지난달 조사에서 53%를 기록했던 반대 응답률은 한 달 만에 60%대를 웃돌았다.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이 국장 거행을 반대할 정도로 반발 여론이 극심해졌다는 뜻이다.


◆애국심 고취 수단 '국장'…공동체 의식 사라지자 반발만

일본 내 평론가들은 국민들에게 국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점이 반발 여론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공감대 부족은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데서 비롯된다.


앞서 일본은 제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 해군을 지휘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과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진행했는데 당시 국민들은 이 같은 결정에 큰 반발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본의 미디어 평론가 모리노부 히로는 아사히신문에 "일본 국민들은 두 인물이 국가 발전을 위해 큰 공헌을 했다는 공감대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NHK방송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경우 전임 총리의 국장 거행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을 재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야당과 국민의 뜻을 모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21일 도쿄의 총리 관저 인근에서 국장에 반대하는 시민이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을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조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1일 도쿄의 총리 관저 인근에서 국장에 반대하는 시민이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을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조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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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이후 패배주의에 휩싸여 탈력감을 느끼던 일본 국민들에게 국장은 공동체의 단결감과 결속력을 느낄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모리노부는 "당시 국민들이 국장을 통해 일체감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며 "언론도 국장 거행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사회 풍조는 고도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개인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국가와 일체감을 느끼려는 사회 분위기가 사그라지면서 국장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정치권의 행보가 국민들의 반발심을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국가의 성공보다 개인의 삶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정치인의 공헌을 기리는 사회 분위기에 반감을 갖는 이들도 늘어났다.


주오 대학의 미야 준이치 교수는 "요시다 전 총리 이후 55년간 국장이 시행되지 않은 것은 패전 이후로 국민들의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며 " 국장이 전쟁을 동원하고 국위선양을 위해 이용된 측면이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흡한 정치적 명분…반대 여론 더욱 악화시켜

정치적인 합의 없이 국장을 밀어붙이려 한 점도 반대 여론을 확산시켰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숨진 뒤 국회 논의 없이 각의(국무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국장 시행을 결정해 비판받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과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사망하자 미키 다케오 내각이 국장 시행 여부와 관련해 충분한 논의를 거친 사례를 언급하며 기시다 총리의 성급한 결정을 지적했다. 당시 내각 법제부는 국장이 전액 국세로 치러지는 만큼 입법부와 사법부의 승낙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국민장' 형태로 장례식을 치렀다.


헌법학자 미나미노 모리는 아사히 신문에 "헌법 66조에 따르면 내각은 국회와 연대의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며 "법률상 근거가 필요한 행정행위는 국회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들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국장이 치러지다 보니 혈세 낭비와 강제 조의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16억6000만엔(162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각의의 결정과 예산 집행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도쿄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시민단체는 "국장은 국민들에게 조문을 강제하는 행위로 헌법상 보장된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국민의 의사를 문전 박대한 결정"이라고 법원의 기각을 비판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아베 전 총리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국민들 여전히 사이에서 엇갈리는 만큼 이들을 설득할 충분한 근거가 필요했다고 지적한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6년 오사카 국유지를 모티모토 사학재단에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일본 정부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에 아베 전 총리가 자신의 후원회 회원을 초대해 선거 운동에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언론 전문가 마츠다 코마키는 아사히 신문에 "노인층에서는 아베 전 총리를 둘러싼 '모리모토 스캔들'과 '벚꽃 스캔들'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며 "청년층과 달리 정치적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노인들이 전후 일본 재건에 기여한 총리들도 치르지 않은 국장을 거행하게 되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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