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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혼외자에 20억 상속’ 사인증여 유증처럼 철회 가능”… 첫 판단

최종수정 2022.08.17 10:45 기사입력 2022.08.17 10:26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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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증여자가 사망하면 수증자(증여를 받는 사람)에게 일정한 재산을 주기로 하는 사인증여계약도 유증과 마찬가지로 증여자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민법은 계약인 사인증여에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면서도 구체적인 준용 범위를 정하지 않고 있어, 단독행위인 유증에서처럼 증여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철회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 제1108조 1항이 사인증여에도 준용됨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근저당권말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인증여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해 효력이 발생하는 무상행위로 그 실제적 기능이 유증과 다르지 않으므로 증여자의 사망 후 재산 처분에 관해 유증과 같이 증여자의 최종적인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 제1108조 1항은 사인증여에 준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원심판결 이유 중 사인증여의 철회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부분은 부적절하지만 이 사건 사인증여계약의 철회를 인정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덧붙였다.

내연녀 B씨와의 사이에 혼외자 C씨를 갖게 된 A씨는 2012년 1월 자신이 사망하거나 의식불명이 될 경우 재산의 40%를 B씨 모자에게 준다는 각서를 썼다. 자신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혼외자인 C씨는 상속을 받을 수 없어 B씨 혼자 C씨를 양육하며 겪게 될 어려움을 대비한 조치였다. 각서에는 당시 1살이었던 아들 C씨가 30세가 될 때까지 B씨가 자금을 관리하고 이후에는 C씨가 관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A씨는 1년여 뒤인 2013년 4월 '상속내용'이라는 제목으로 또 한장의 각서를 작성했다. 현재 자신이 보유한 재산 중 20억원을 혼외자인 C씨에게 상속하고 C씨가 35세가 될 때까지 B씨가 관리하게 하며, 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실제 같은 해 5월 채권최고액을 15억원으로 하는 근저당권설정등기를 B씨 명의로 마쳤다.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이 나면서 발생했다.


A씨는 2015년 2월 B씨와 혼외자 C씨를 상대로 친생자관계존재확인과 양육자지정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법원에서 '원고는 혼외자가 친생자임을 인지한다. 원고는 피고에게 혼외자의 양육비로 2015년 12월부터 혼외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매월 말일 월 200만원씩 지급한다'는 등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A씨가 C씨를 인지하게 되면서 C씨는 친생자로 인정받게 돼 상속권을 갖게 됐다.


C씨에게 매달 양육비를 지급하게 된 A씨는 각서에서 약속한 증여의 의사표시를 철회하며 B씨를 상대로 근저당권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A씨는 자신이 작성한 각서 내용은 일방적으로 철회가 가능한 유증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반드기 기재돼야 할 유언자의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 사이에 성립한 사인증여계약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근저당권은 B씨의 명의로 돼 있지만 각서상 수증자는 아들 C씨이기 때문에 채권자가 아닌 B씨 명의로 경료된 근저당권 등기는 담보하기 위한 채권(피담보채권)이 존재하지 않아 무효라고 판단했다.


또 설사 근저당권이 유효하다고 해도 사인증여계약은 증여자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고, A씨가 철회의 의사표시를 한 점이 인정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 역시 A씨와 C씨 사이의 사인증여계약 성립을 인정했다.


A씨가 각서를 작성한 것을 사인증여의 의사표시를 담은 청약으로 볼 수 있고, C씨의 친권자이자 법정대리인인 B씨의 승낙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했다고 봤다.


문제는 A씨와 C씨 쌍방 당사자 간에 체결된 사인증여계약을 A씨가 일방적으로 철회할 수 있는지였다.


민법 제562조(사인증여)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생길 증여에는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유언자는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언의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는 민법 제1108조 1항도 준용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견해가 대립되고 있고,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결이 없는 상태였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된 2014년 부산고등법원 판결을 원용하며 사인증여도 증여자가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고 봤지만 2심 재판부는 달리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 규정이 사인증여에는 원칙적으로 준용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인증여의 법적 성질은 계약이고 계약의 상대방인 수증자는 사인증여계약에 응해 조건부권리(일명 기대권)를 취득하는 것이어서 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 단독행위의 성질에 기초해 규정된 일방적 철회규정인 민법 제1108조를 사인증여에 곧바로 준용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인증여 역시 증여계약의 일종이고 우리 민법이 증여계약의 해제를 일정한 조건에서만 인정하고 있는데 사인증여의 경우에만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우리 민법의 해석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 것.


다만 2심 재판부는 "사인증여는 유증과 같이 증여자의 최종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사인증여계약 체결 이후 증여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법률관계의 변동 등이 생길 경우 이를 사인증여 계약관계에 반영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사인증여 철회를 인정하는 목적론적 해석을 내놨다.


재판부는 "사인증여에 유증의 철회에 관한 규정이 준용될 수는 없지만 사인증여계약의 전제가 된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의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친해진 정) 관계가 파탄에 이르거나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의 법률관계의 변경이 있고 그로 인해 사인증여계약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될 수 있는 등 사인증여계약 체결 당시 전제했던 관계에 중대한 변동이 있고, 증여자가 사인증여를 철회하더라도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 1108조를 준용해 사인증여의 철회를 긍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사인증여는 혼외자 등과 같이 법률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관계에서 상속 내지 보상의 의미로 이뤄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므로 이 같은 법률관계가 이후 합법적인 관계로 포섭되거나 그에 합당한 경제적인 보호조치 등이 이뤄지고 있다면, 증여자에게 철회권을 인정해 사인증여관계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함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원고(A씨)가 사망하더라도 혼외자(C씨)가 적법하게 상속을 받을 수 있으므로 원고가 사인증여의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것이 혼외자 또는 피고(B씨)의 신뢰를 중대하게 침해한다거나 신의칙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사인증여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B씨 명의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의 판단, 즉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사인증여의 철회가 가능하다는 부분은 부적절하다며 사인증여 역시 유증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철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A씨의 말소등기 청구를 인용한 2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증의 철회를 인정한 민법 제1108조 1항을 사인증여에 준용해 사인증여의 철회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학설의 대립이 있을 뿐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시한 적은 없었다"라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사인증여와 유증의 실제적 기능이 다르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인증여의 철회가 허용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판시했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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