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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역할 '가난한 사람을 눈 앞에서 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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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반지하서 사망한 가난한 사람들
사회서 배제 당한 가난한 사람이 향하는 곳, 반지하
반지하 해결책, 가난한 사람과 어우러져 사는 방법까지도 고민해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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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지난 8~9일 서울 등 중부권엔 기록적 폭우가 왔다. 폭우는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은 차오르는 물을 피하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에 살던 50대 여성 A씨가 익사했다. 이 일가족의 구성원과 A씨의 공통점은 반지하에 살던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다.


반지하는 냉전의 산물이다. 1970년 당시 정부는 북한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주택을 새로 지을 때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드는 법을 만든다. 북한과 전쟁이 났을 때 따로 공사를 할 필요 없이 진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즉, 애초에 거주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자 반지하 건물을 거주용으로 개조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집처럼 보이게 지상부에 작은 창문을 뚫어 채광과 통풍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 공간을 사람들은 반지하라고 불렀다.

하지만 반지하는 지상부의 공간보다 일조량, 습도, 공기의 질 등이 턱없이 좋지 못하다. 곰팡이와 바퀴벌레는 기본이며 창문 옆에 자동차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어 열고 지내기도 어렵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말이 반지하지 그냥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이라고 봐야 한다"며 "창문 하나 뚫었다고 '집'이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만이다"고 말했다.


집이라고 부르기 힘든 반지하…사회서 퇴출된 가난한 사람이 향한 곳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 모습

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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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역사는 가난한 자들을 쫓아냈던 인류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동서양을 떠나서 인류는 가난한 자를 전염병에 걸린 병자, 범죄자 등과 묶어 사회에서 퇴출돼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눈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워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도 그러한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늘어나는 서울시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민들을 쫓아냈다. 대표적 예가 광주대단지 사업이다. 박 정부는 서울시 빈민가에서 철거 당한 빈민들을 당시 경기도 광주군(현재 성남시)으로 이주시켰다. 하지만 졸속 사업, 부패한 행정 등으로 인해 빈민들은 광주군에서 제대로 된 집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1971년 빈민 5만 여명이 경찰과 충돌한 '8.10 광주대단지 사건'을 일으켰다.


외신에서 이번 반지하 참변을 영화 '기생충'과 비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낮은 곳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으로 쫓겨난다. 2019년 5월 영화 기생충 개봉 이후 영국 공영방송 BBC는 반지하를 'banjiha'라고 부르며 "기본적으로 햇빛이 없으며 사람들이 시선을 내리면 내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라고 묘사했다. 한 주요 외신은 관악구 신림동 침수 사건을 두고 "집값이 최대 정치 화두 중 하나인 한국에서 대기업이 건축한 고층 건물에 산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값 싸고 축축하며 곰팡이가 핀 반지하에서 산다"고 보도했다.

반지하 문제 단순하게 다루면 반발 직면할 수도…"장기적으로 접근해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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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반지하 문제의 해결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사회에 섞이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서울시의 대책은 이러한 초점을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서울시는 지하 및 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론 일몰제로 추진해 순차적으로 주거용 반지하를 없애고 반지하를 비주거용으로 용도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원래 반지하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서울시엔 약 20만명이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어 반지하 일몰제는 주거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획기적인 대책을 펴기 어려운 환경이란 지적도 나온다. 반지하에 숨어 있던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에 함께 섞이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을 경우 서울시는 사회 구성원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의 임대동은 다른 색 페인트로 칠한다거나 가벽을 설치해 구분 짓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어린 아이들조차 공공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을 '휴거지' '엘사' 등 혐오표현을 쓰는 사회다. 아울러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에게 임대아파트를 비교적 쉽게 할당한다면 공정성 시비에도 휘말리기 쉽다. 가난한 사람들이 단순히 거주할 곳을 못 찾는 상황을 넘어 혐오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반지하에서 벗어나고 사회에서 어우러져 살려면 장기적으로 사안을 다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 교수는 "가난한 사람들이 반지하에서 살지 않길 원한다면 단순한 정책만으론 안 되며 공공이 질 좋은 주택을 다수 확보하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만 가능하다"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도 뒤바뀌는 데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반지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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