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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헌트②]백지가 되려고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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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 정우성 인터뷰
친구 이정재 '남산' 판권 4년간 각색 옆에서 지켜봐
세 차례 거절 결국 함께 작업…연출 부담 잘 이겨냈고 만족

[라임라이트·헌트②]백지가 되려고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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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가 되려고 너를 만났다. 백지가 돼서 너를 만나고 백지처럼 잊었다. 너를 잊으려고 백지답게 살았다.(중략) 백지는 도발한다. 백지처럼 잠든 백지의 짐승을. 으르렁대는 소리도 으르렁대다가 눈빛만 내보내는 소리도 백지는 다 담아 준다. 백지가 아니면 담기지 않는 소리를 백지가 담으니까 이렇게도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그걸 다 모아서 백지는 입을 다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백지 한 장이 있다.’


김언 시인의 시집 ‘백지에게’에 담긴 내용이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두 사람의 관계도 이와 닮았다. 청춘을 연기하는 청춘들로 만나 23년의 우정을 쌓은 이정재와 정우성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작품에서 다시 만나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백지가 되려고 너를 만났고, 너를 잊으려고 백지답게 살았다는 오류에 가까운 김언 시인의 순환논법은 두 사람의 운명을 기시감처럼 투영한다.

영화 ‘헌트’를 통해 스크린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만큼이나 부담감은 상당했다. 정우성은 "그동안 흐른 세월이 느껴지는 만큼 둘의 작업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본질적인 재미, 캐릭터를 구현하는 배우로서 연기의 완성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고 놓쳐서도 안 됐기에 더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토로했다.

원작 시나리오(‘남산’) 판권을 사고, 4년에 걸쳐 직접 각색하며 나아가 연출까지 결심하게 된 이정재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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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재씨가 자신이 작품을 직접 연출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기에 ‘이 지옥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나’ 걱정이 앞섰다"며 "그런 이유에서 너무 큰 부담을 (이정재가) 안게 될까 봐 출연 제안을 거절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우성과 이정재가 손을 잡았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작품에 대한 부담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관객과 업계의 기대치가 높아짐으로 친구(이정재)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질 것을 염려해 출연 제안을 네 차례 거절했던 정우성은 결국 주연을 맡으며 현장에서 친구의 곁을 지켰다.


앞서 연출과 출연을 직접 맡은 영화 ‘보호자’ 촬영을 진행했었기에 정우성은 지기의 어려움과 고독을 위로하는 동반자로서 그 누구보다 작품에 충실하게 임했다. 극 중 자기 신념을 향해 우직하고 집요하게 달리는 김정도(정우성)와 박평호(이정재)가 마주한 취조실 씬에서 거울 너머 자신을 응시하는 상대를 향해 대화하는 두 사람은 반사된 자기 모습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조직의 이념과 각자가 갖고 있는 딜레마에 갇힌 두 사람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일견 비슷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데칼코마니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우성은 닮은 사람들이 싸울 때 가장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한다. 그런 두 사람의 치열함은 프레임 밖으로도 이어져 각자 신념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배우이자 영화인의 모습으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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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 우정을 이어 온 두 사람의 행보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에 가까운 서로의 배려와 통찰이 있었다.

"직접 위로하지 않아도 우리 사이에 형성된 공기와 분위기만으로 서로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다는 걸 충분히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위로의 메시지를 ‘공기’와 ‘분위기’를 토대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 친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무엇이 그들을 이어주고 있는 것일까. 정우성은 "서로에게 바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했기 때문에 오랜 우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단 한 번도 묻거나 들어본 적 없었을 만큼, 두 사람은 서로를 응원하는 파트너로서 긍정적인 자극과 위로를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우정, 함께한 작품에 이어지는 찬사에도 정우성은 담담하게 "당연한 건 없다"고 말한다. 철학적 사유가 녹아 있는 메시지다. 정우성이 전한 부연 설명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모든 게 당연하지 않다. 칭찬도, 성공도, 실패도 당연하지 않다. 내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고, 지금 작품에 이어지는 반응이 좋을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영화인 앞에 인사할 때 후배로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인의 삶을 살았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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