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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만들 사람이 없다②]하청 구조와 인력 수급 간 고질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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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고용인원 20만3441→9만2687
다단계 하청 구조 속 저임금·고강도노동 만연
직고용 늘리는게 답이지만 적자 시달리는 조선사들

편집자주한국 조선업이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을 앞세워 글로벌 발주 물량을 싹쓸이하고 있다. 하지만 긴 불황의 터널을 거치며 빠져나간 인력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감이 있음에도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들어 '호황 속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전·현 정부가 잇따라 조선 인력 양성책과 외국인 인력 수급 대책을 내놨지만 구조적 문제를 풀지 못하는 대책이라는 평가다. 수주 호황기라지만 적자 지속·출혈경쟁·저임금 등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인재들이 조선업계를 외면하고, 건조 작업을 할 숙련 기능공들은 조선소에 일손이 모자란다는 소식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장기간 지속된 불황으로 조선업계는 다른 산업 현장에 비해 처우가 나빠졌고, 불황·호황에 따른 온도 차가 커 고용 안정성까지 낮은 탓이다. 숙련된 근로자만 수급하면 되는 게 아니라 친환경 선박 기술과 설계 등 고급 인력 확보도 시급한 조선 산업의 문제를 어떻게 풀지 들여다봤다.
[배 만들 사람이 없다②]하청 구조와 인력 수급 간 고질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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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할만한 젊은 친구들이 없십니더. 하청 노동자들만 뽑다가 일감 없으면 자르는데 조선 산업에 미래가 있겠습니꺼…"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가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달 21일 거제 옥포조선소 앞에서 만난 한 50대 하청업체 노동자의 말이다. 우리 경제의 기간산업으로 내세우던 조선업에 더 이상 일할 사람이 오지 않는다. 수주는 늘어났지만 눈앞의 일감을 소화할 인력도,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인재도 없다. 이들을 조선소로 끌어들일 만한 특별한 유인책마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현재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위기감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인력난의 원인은 만성 적자와 불안정한 수주 주기로 인해 만들어진 '다단계 하청 구조'가 저임금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조선산업 전체 고용인원은 20만3441명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9만2687명까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조조정 등의 문제로 절반 이상의 인력이 떠났다. 지난 5월까지 집계된 인원도 9만2992명에 불과하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근로자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근로자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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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임금이 조선업계 인력 수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의 제조업 대비 조선업 임금은 150.8이었다. 제조업 종사자가 평균 100만원을 받는다면 조선업계 종사자는 150만원을 넘게 받은 것이다. 2019년의 제조업 대비 조선업 임금은 102.8로 여타 제조업 평균 월급과 차이가 없었다. 고노동·고임금 구조가 고노동·저임금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업은 다단계 재하청 구조를 띤다. 수주가 안정적으로 지속되지 않다 보니 고용인원을 계속 유지하기보다 하청 비율을 늘려 고정비를 줄이려는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차 하청업체가 물량팀(특정 공정의 업무를 일정 기간 수행하는 팀)이나 돌관팀(단기간 웃돈을 얹어서 업무 수행하는 팀) 등에 재하청을 주는 비율도 늘어나게 된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다 보니 2차, 3차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놓이게 됐고 조선업은 품질 저하, 안전 불감증, 숙련공 부족 등의 문제도 떠안게 됐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난달 1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1도크를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은 조선업의 하청구조 문제를 노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지난달 1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1도크를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은 조선업의 하청구조 문제를 노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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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조선산업의 고용구조 현황과 문제점'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소에서 하청이 급격히 확대됐다. 원래는 직영 노동자가 더 많았지만 2007년을 기점으로 하청 노동자 수가 직영을 넘어섰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01년 직영노동자는 5만4265명, 하청노동자는 3만 2417명 수준이었지만 2011년 6만6842명(직영), 9만8명(하청) 수준으로 하청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이후 하청 노동자 수가 직영 노동자 수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차이를 보이다 지난해 4만 5435명(직영), 4만7252명(하청) 수준으로 비슷해졌다. 수주 감소로 인한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하청업체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청 구조를 해체하기도 어렵다. 조선 3사가 직고용을 늘려 하청 노동자들을 줄이는 게 답이지만 이들 3사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며 '조선업 존속'을 고민하는 처지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수주량 증가에도 현재 경영 수지는 마이너스이고,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경영적인 측면에서 임금 인상 요인이 많지 않다"라며 "선가가 오르는 등 경영수지가 안정화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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