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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 故이어령 선생 “‘잘 있어, 잘 가’는 마지막 인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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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이별이 끝이 아니고 잘 있어, 잘 가, 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故이어령 선생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생명을 위해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책 한 모금] 故이어령 선생 “‘잘 있어, 잘 가’는 마지막 인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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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이 다섯 가지를 내가 어떻게 경험했는가, 그 말과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여러분과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의미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환히 들여다볼 수 있게, 살아온 발자취를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겁니다.

이제 사과는 글로벌한 사과가 됐고, 미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어요. 내가 없는 세상, 내가 없는 미래의 세상에서 이 사과가 어떻게 될 거냐, 복숭아가 어떻게 될 거냐, 대 표적인 먹거리가 뭐가 될 거냐,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뭐로 변할 거냐, 흥미진진하지 않아요?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도 바나나 이야기를 썼어요. 내가 읍내에 갔는데 누가 바나나를 사주는 거예요. 아무아무개 아버지가 사줬다면서 나한테 바나나를 사주는 거예요. 얼마나 좋았겠어요? 바나나를 가져오다가, 어린 나는 바나나를 들고 오다가 떨어뜨렸어요.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뭐 사과 이런 게 문제가 아니죠. 떨어진 걸, 그걸 주워 올렸더니 이게 또 떨어져요. 다발로 된 것이 흩어져서 작은 손에 올려놓으면 떨어지고, 또 올려놓으면 또 떨어지고. 결국 바나나를 다 버리고 빈손으로 울면서 집에 왔어요.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요. 바나나를 갖게 되어 그렇게 좋았지만, 집에 들어왔을 때 내 손은 빈손이었어요.


헤어짐을 앞두고 내가 여러분에게 유언처럼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반도성의 회복입니다. 반도성의 회복은 시파와 랜드파 사이에서는 절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코끼리 싸움 속 풀밭, 고래 싸움 속 새우처럼 견뎌내지 못한 것이 지난 역사였어요. 이걸 브레이크 스루, 관통할 수 있는 게 바로 반도성의 회복입니다. 그건 말 탄 사람, 배 탄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밭을 가는 사람들이 이룰 수 있어요.


생명자본.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그것도 아직 완성되지 않아 귀엣말로 몰래 말씀드리고 가는, 우리의 내일에 다가올 문명입니다. 아직도 화석 인간처럼, 살아 있는 화석 인간처럼 우리의 버려둔 문화 속에 남아 있는 해녀와 심마니. 전 세계에 없는 심마니, 그리고 해녀의 그 숨소리, 숨비소리. 마지막 전복을 따고 나와 내쉬는 참고 참았던 호흡, 그 힘. 참았던 그 고통과 해상으로 올라와서 내쉬는 그 숨비소리. 그 소리가 심봤다 하는 소리와 함께 고래 싸움에 등 터졌던 그 고난의 시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반전극을 쓰는 놀라운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그러한 날, 내가 여러분과 작별하면서 꿈꾸고 행복해하는 그러한 한순간의 인사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별 |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144쪽 | 1만4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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