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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코리안드림⑪]"우즈벡 주부도, 연변 출신 사장님도 은행에 귀한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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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통장 만들고 본국 송금하려면 은행부터 찾아야
필수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곳

은행, 외국인 금융부터 일상생활까지 도와주는 곳으로

[뉴 코리안드림⑪]"우즈벡 주부도, 연변 출신 사장님도 은행에 귀한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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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안성=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돈을 벌러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일자리를 구한 다음 월급 통장을 만들고 본국으로 송금하는 법부터 익히는 곳은 은행이다. 필수 관문이지만 가장 버거운 곳이기도 하다. 복잡한 서류는 둘째 치고 어려운 금융용어부터 외국인들에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뉴 코리안 드림'


"가장 어려운 건 인터넷뱅킹…급하면 퇴근 후도, 주말에도 연락해요"
▲지난 8일 NH농협 선부동지점 5번창구 담당자인 김용숙 과장이 중국인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지난 8일 NH농협 선부동지점 5번창구 담당자인 김용숙 과장이 중국인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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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공단 한가운데 자리한 NH농협 선부동지점 5번 창구. 건물 철골 작업을 하는 회사를 운영 중인 쉬잉판(59)씨는 여기 단골이다. 이 자리 문턱이 닳도록 찾는 중국인은 그 뿐만이 아니다. 5번 창구 담당자인 김용숙 과장(37)은 일대에서 중국어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은행만 오면 말문이 막혔던 안산 중국인들도 김 과장 앞에 앉으면 방언이 터진다. "한국말을 좀 하시더라도 일부러 중국어로 말을 걸어드려요. 그러면 처음에는 딱딱하게 통장 재발급만 요청하셨던 분들도 그제서야 여태까지 은행에서 거래하면서 어려웠던 점들을 말씀하시고, 다른 거래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연변에서 자란 쉬용판 대표도 안산 중국인들 커뮤니티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 중 한명이었다. 16년전 한국 취업비자를 받고 혈혈단신 입국할 때만 해도 수중에 30만원이 전부였다. 전라남도 남원을 거쳐 목포로 흘러가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안산에 올라와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정규직 직원 5명, 일용직 노동자 11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엿한 회사 대표가 됐다. 그는 법인을 운영하면서 은행 의존도가 더 커졌다고 했다.


가장 어려운 건 뭐니뭐니해도 인터넷뱅킹이다. 결제대금을 송금하다가 중간에 탁 막힐 때는 앞이 깜깜하다. "중국인이다보니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늘 조심합니다. 납품 대금을 하루라도 늦게 주는 게 싫어서 그날 바로 부쳐주려고 하는데 중간에 멈출 때가 있어요. 퇴근 이후나 주말까지 급할 때 김 과장님을 찾아가면 언제든지 도와주시니 참 고맙지요"

▲지난 8일 NH농협 선부동지점 5번창구 담당자인 김용숙 과장이 중국인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지난 8일 NH농협 선부동지점 5번창구 담당자인 김용숙 과장이 중국인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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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부동지점을 찾는 고객 중 열명 중에 세명 정도가 외국인이다. 은행앱을 쓸 줄 모르는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동네다 보니 하루에 최소 200명, 많게는 300명 정도가 밀려온다. 지난 8일 오전, 5번 창구에서 신용카드를 신청하는 중국인과 김 과장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자 대기표를 쥐고 있던 다른 중국인들의 시선도 전부 집중됐다. 외국인이 잘 모르는 은행업무 중 하나가 신용카드 발급이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후불교통카드까지 못 써 불편함을 겪는다.


안산 원곡동 한 식당에서 일하는 위메이(56)씨도 그랬다. 아끼고 아껴 입출금 통장에 몇천만원을 쌓아놨지만 신용카드 생각은 아예 못했다.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사서 선불충전을 해 썼다. 돈이 떨어진 줄 모르고 버스에 탔다가 도로 내린 적도 몇 번 있었다. 은행 거래실적이 충분하면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건 김 과장이었다.


김 과장은 "신용카드를 발급해 드린 다음 날 은행 직원들 나눠먹으라고 월병을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오셨다"며 "언어가 서툴다 보니 적금도 못 드는 외국인 고객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에게 한번 더 중국어로 안내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우즈벡 은행 홍보요원에 SOS…학교에서 온 문자, 집세 민원도 해결
▲지난 8일 홍보요원인 김 블라드미르(48)씨가 NH농협은행 안성시지부에서 우즈베키스탄 외국인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지난 8일 홍보요원인 김 블라드미르(48)씨가 NH농협은행 안성시지부에서 우즈베키스탄 외국인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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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국에 가족과 함께 들어와 경기도 안성의 한 축사에 취직한 우즈베키스탄인 아흐마데에바 빅토리아씨(36). 지난주 9살 짜리 딸 아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낸 문자를 받고 어쩔 줄 몰랐다. 인사 정도만 할 줄 알았지 한글을 읽고 쓰는 건 아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통장을 만들러갔다가 만났던 NH농협 안성시지부 홍보요원이 떠올랐다. 문자를 캡처해 SOS를 쳐서 학교 준비물을 겨우 챙겨 보냈다.


빅토리아씨는 "근처에 사는 고향 친구는 집주인이 월세를 계약서보다 올려달라고 해서 홍보요원한테 도와달라고 했대요. 러시아말과 은행말을 둘 다 잘하는 사람은 은행밖에 없어요. 은행 일 뿐만이 아니라 많은 데서 도움을 받습니다"


홍보요원인 김 블라드미르(48)씨는 23년전 입국해 한국 국적을 땄다. 매주 금요일마다 은행에 출근해 외국인들을 도와주고 있다. NH농협은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전국 총 10개 지역에 김씨와 같은 홍보요원을 배치했다. NH농협과 제휴한 글로벌 송금 결제 네트워크 기업 웨스턴 유니언 노란조끼를 입고 일주일에 한번씩 은행 문 앞에 앉아있는 날이면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국인들이 줄을 선다. 중국어, 베트남어, 러시아어, 태국어, 몽골어, 캄보디아어 등 총 8개 외국어로 된 전화 금융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홍보요원 인기를 따라올 순 없다. 창구까지 따라가 통역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지난 8일 홍보요원인 김 블라드미르(48)씨가 NH농협은행 안성시지부에서 우즈베키스탄 외국인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지난 8일 홍보요원인 김 블라드미르(48)씨가 NH농협은행 안성시지부에서 우즈베키스탄 외국인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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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은행은 모든 외국인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 은행에서 정보도 얻고 도움도 받아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며 "한번 올 때마다 20명씩 상담해주는데, 일이 생겨 오는 날짜를 옮길 땐 이곳 사람들끼리 알아서 SNS로 정보를 미리 공유할 정도"라고 했다.


안성시지부 직원들의 책상에는 달력 모양의 '외환업무 가이드북'이 놓여져 있다. 지난 8일 오후, 김씨가 적금에 가입하고 싶다는 외국인을 창구로 안내하자 은행 직원이 가이드북을 확인하며 인사했다. "즈드랏스뜨부이쪠. 쳄 야 모구 왐 포모츠?"(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편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전년 대비 1.3% 늘어난 201만2862명으로 집계됐다. 201만명은 시중은행들도 고객 모시기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수준이다. 인구로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에 이은 5위권에 해당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시중은행의 주거래통장은 200만~300만좌 수준"이라면서 "물론 급여 수준도 다르고 상당 액수가 해외에 송금된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웬만한 시중은행 규모의 고객군인 셈"이라고 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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