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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쌓은 역사"…한국 우주발사체 개발 30년 뒷얘기[과학을읽다]

최종수정 2022.07.05 13:26 기사입력 2022.07.05 13:26

미국 '발목'잡기·주요 강국 기술 전수 거부
순수 독자 기술로 30년 넘게 걸린 사연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및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실제 기능이 없는 모사체(더미) 위성만 실렸던 1차 발사와 달리 이번 2차 발사 누리호에는 성능검증위성과 4기의 큐브위성이 탑재됐다./고흥=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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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30년이 걸렸다. 1993년 과학실험로켓(KSR-I) 1호 발사 성공 즈음을 시작으로 계산해서다. ‘세계 7대 우주강국’, 그것도 독자적 기술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했다. 한국에 기술 이전을 거부한 기존 우주 강국들을 감짝 놀라게 했다.


지난달 21일 2차 발사 끝에 최종 성공한 첫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 얘기다. ‘빨리빨리’가 '국룰'이고 세계기술올림피아드를 수십년째 제패하고 있는 기술 강국 한국이 우주 발사체 개발에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고, 흔한 기술 이전 조차 못받았을까? 이제야 털어 놓는 한국 우주발사체 30년의 뒷얘기를 살펴본다.

◇미국의 발목잡기

최근 외교부는 주무부서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제치고 과학기술 외교를 자신들이 전담하겠다고 나섰다. 현재 1개과가 에너지·과학기술 분야 외교를 담당하고 있는데, 국 단위로 확대 개편해 ‘과학기술·사이버국’을 만든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이 안보의 중요한 요소가 됐고 미·중 기술 패권과 신냉전 시대 개막 등 그럴 듯한 명분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의 요구설이 돌고 있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미사일 지침 해제, 아르테미스 협약 참여 등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상대 측인 미국 국무부의 '심기'를 상하게 만들었으며 '파트너 교체'를 요구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1980년대 일본에 우주로켓 기술을 전수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최근까지도 미사일 사거리, 연료 종류를 제한하는 ‘미사일지침’과 기술이전을 막는 국제무기거래규정(MCTR)을 통해 우주발사체 개발을 강력히 규제해왔다.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이 30년 이상 걸린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 중후반 한국이 핵개발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핵확산, 대량살상무기 방지 차원에서 이를 강력히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1979년 양국간 ‘약속’에 불과한 ‘미사일 지침’을 강요해 자체 기술 연구 개발과 산업 발전을 틀어 막았다. 2001년에는 미사일 지침을 개정해 민간우주발사체를 액체추진기관으로 제한했다. 군용으로 개조할 수 없으며 군용 로켓 단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도 걸었다. 2012년 2차 개정을 통해 군용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에서 800㎞(탑재 중량은 500㎏ 유지)로 늘어났지만 우주 발사체는 변화가 없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발사체 연구는 손쉬운 고체 연료 대신 더 어려운 액체 연료 엔진 개발에 매달려야 했다. 2013년 발사에 성공한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 2단부에 고체 연료 킥모터가 사용되긴 했지만 상한선 제한에 묶여 소형에 그쳤다. 다음 달 3일 미국 스페이스X에 의해 발사되는 한국형 달탐사궤도선(KPLO) 개발 사업 역시 당초 독자 발사체 탑재로 계획됐지만 고체 연료 사용이 불가능해 포기했다. 지난달 21일 2차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도 1, 2, 3단 모두 액체 추진 기반 엔진으로 개발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소속 한 전문가는 보고서를 통해 "군사용 미사일의 역량 확대에 상응하는 우주 발사체의 고체 역량 강화를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나 실현되지 못했었다"면서 "미사일 지침 개정의 주 관심사가 군사적 목적이었기 때문에 민간 우주발사체 분야는 상대적으로 우선 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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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연에 '외국 박사'가 드문 이유?

대전 연구개발특구에서 KARI는 다소 이색적인 조직이다. 미국 하버드대나 MIT대 등 외국에서 고급 기술·지식을 익힌 연구진을 찾아 보기 힘든 유일한 연구 기관이다. 다른 연구기관들에는 해당 분야 최고 해외 대학·연구기관 출신 석·박사들이 즐비하지만 KARI의 경우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서울대, 카이스트(KAIST) 등 '국내파' 연구진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 유수의 대학 출신들도 간혹 있지만 물리학·화학 등 기초학문 전공자로 응용 분야 전공자는 거의 없다.


기존 우주 강국들이 우주발사체 기술을 철저히 통제·관리하면서 인력 유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나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등에서 실무·핵심 기술을 연구한 유학생·재외동포 출신들은 우주발사체 기술을 최고 안보 사항으로 정해 외부 유출을 절대 금지하고 있는 규제에 막혀 스카우트 자체가 불가능하다. 분야가 약간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첫 독자 전투기 KF21 보라매 개발에 참여했다가 미국 사법 당국에 의해 체포돼 기밀 누설죄 등으로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모씨가 대표적 사례다.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후 벌써부터 우주 강국들은 한국을 견제하고 나섰다. 관례적으로 기술·인적 교류 차원에서 실시해 온 교환 연수를 일부 기관에서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KARI 소속 한 박사는 1년간 DLR 연수를 계획했고 미리 준비가 다된 상태였지만 누리호 성공 후 돌연 연수 취소를 통보받기도 했다.


열악한 근로조건도 외국 박사들의 영입을 힘들게 만든다. 대전에 위치해 해외 유학파 전문 인력들의 선호도가 떨어진다. 근로조건도 열악해 10여년 전 발사체 연구 개발 초기 단계에서 팀장급 연구원이 젊은 나이에 과로사한 사건도 있었다. 장거리 출장도 다반사다. 사무실인 대전에서 발사체 조립·운영을 맡은 나로우주센터까지 왕복 600㎞, 대전에서 엔진·부품 개발·생산·시험을 하는 경남 사천까지는 왕복 400㎞에 달한다. 2010년부터 두 차례 나로호 발사 실패로 인해 연구원 전체의 연봉이 삭감되는 일도 있어 25개 과학기술 국책연구기관 중 최하위권이다.


신명호 KARI 노조 위원장은 "다른 국책연구기관에서 퇴직하는 경우는 원래 대학 교수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우리는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월급이 적다 보니 창업도 아닌 벤처·중소기업 직원으로 가는 사례도 잦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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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철판 앞에서 흘린 눈물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뜻밖에도 ‘용접’이었다. 2.5㎜ 안팎 두께인 특수 합금을 용접·가공해 추진제 탱크를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연구진이 "세계 최강 선박 제조 국가로 용접 기술은 최고"라는 외부의 시각이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훗날 토로했을 정도다.


누리호의 추진제 탱크는 최대 높이 10m, 직경은 3.5m에 달한다. 그러나 두께는 2.5~3.0㎜에 불과하다. 엄청나게 큰 음료캔과 비슷하다. 문제는 이렇게 얇지만 누리호가 200t의 무게에 가해지는 중력을 떨치고 대기권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가해지는 압력·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리호 추진제 탱크 내부는 빽빽한 삼각형들이 격자 구조 형태, 즉 등방성 격자 구조로 설계돼 있다. 삼각형의 각 변이 연료의 무게를 지지해주고, 탱크 내부의 연료가 출렁이는 현상인 슬로싱을 줄여 준다. 연구팀은 처음에는 설계조차 힘들었지만 반복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된 구조를 고안해 낼 수 있었다.


무중력 상태에서도 연료·산화제가 혼합되지 않고 압력을 유지하면서 터보펌프를 통해 연소기에 주입하는 방법, 노즐에 줄무늬를 만들고 내부에 연료를 냉각제처럼 사용해 3000도가 넘는 분사열을 견디는 ‘재생냉각’ 방식, 유압기를 이용해 4개의 엔진을 유기적으로 조작해 발사체의 방향과 각도, 자세를 제어하는 기술, 엔진 불안정 연소 문제 해결 등이 어려웠던 기술 과제로 손꼽힌다. 고정환 KARI 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지난달 21일 발사 성공 직후 브리핑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의 하나로 추진제 탱크 개발 난항을 꼽았었다. 그는 "추진제 탱크의 개발 공정이 확립 안 되면서 발사체 전체의 그림이 안 나왔었다. '언제 해결돼 언제 만들지'라는 생각에 앞이 안보이던 깜깜한 시기"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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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유는 ‘돈’

누리호 성공으로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지만 본격적인 우주 발사체 보유 국가를 위한 정부의 의지나 방향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현재 1.5t급 위성을 저궤도(고도 600~800㎞)에 올릴 수 있는 누리호의 성능은 미국 민간기업보다 못하다. 지난해 6월 정부가 2조원대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신청을 보류한 결정적인 사유이기도 하다. 대선을 앞두고 "차기 정권에서 결정하는 게 좋겠다"면서 ‘눈치 보기’를 한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앞으로 10년간 열심히 노력해 업그레이드해봤자 경쟁국·발사체들은 그만큼 더 앞서 나가 있을 게 뻔하니, ‘대도약(퀀텀 점프)’ 수준의 기술 혁신 연구를 다시 제안하라는 취지였다.


㎏당 발사비용이 3만2595달러(2018년 기준)에 달하는 누리호로는 2000달러에 불과한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체조차 이길 수 없다. 최소한 자체적으로 지구정지궤도 등 고궤도에 대형 위성을 발사할 수 있고, 달이나 소행성 나아가 화성 등 원우주 탐사까지 가능한 능력을 갖춰야 본격적인 우주 개발 시대를 열어갈 준비를 한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다. 미국이 달 착륙 탐사, 기지 건설 등을 목표로 동맹국들을 모아 진행 중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그 ‘과실’을 따낼 수 있는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정부는 현재 누리호를 개량해 100t급 액체엔진, 추력 조절 및 회수를 위한 로켓 재활용 기술 등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장거리 발사체 미개발에 따른 ‘유동성’을 이유로 소행성 아포피스 탐사 계획은 사실상 ‘포기’하기도 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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