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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⑧ “중요한 건 '서촌스러움' 지키는 것”-설재우ㆍ김민하 로컬루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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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서촌 토박이 설재우, 김민하 대표
"바꿔야 하는 건 '서촌' 아닌 '서촌 바라보는 시선'이죠"
"다양성 존중되는 마을 돼야"

소상공인 정착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인 '로컬루트'를 설립한 설재우, 김민하 공동 대표. 두 사람은 서촌 이웃 주민으로 만나 20년 뒤 서촌을 함께 알리는 사업적 동지가 됐다.

소상공인 정착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인 '로컬루트'를 설립한 설재우, 김민하 공동 대표. 두 사람은 서촌 이웃 주민으로 만나 20년 뒤 서촌을 함께 알리는 사업적 동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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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서희 인턴기자] 오래된 벽돌담과 손으로 아무렇게나 쓴 가게 입구 팻말. 서촌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서울과 동떨어진 동네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예스러운 상점들은 서촌만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지난 20일, 광화문 위워크에서 만난 김민하 로컬루트 대표는 서촌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을'이라고 표현했다. 20대 중반, 6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 대표가 마주한 건 변해버린 낯선 서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서촌에선 옛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김 대표는 “프랜차이즈 상점이 즐비한 서울 도심과 달리 서촌은 스타벅스가 생긴 것 말고는 바뀐 게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

스무살이 지난 후에야 서촌의 매력을 깨달았다는 김 대표. 그녀는 또 다른 ‘서촌 토박이’ 설재우 대표와 함께 지난해 12월 서촌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로컬루트를 설립했다. 설립 이후 서촌 지역 소상공인들의 정착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설재우ㆍ김민하 로컬루트 대표를 만나 청와대 개방 이후 바뀐 서촌의 모습과 기대하는 서촌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서촌스러움’을 정착시키는 게 로컬루트의 목표라고 했는데, ‘서촌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설재우) ‘서촌스러움’이란 소상공인이 중심이 된 서촌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서촌은 소상공인의 비율이 98%에 달할 정도로 소상공인 비율이 높은 동네다. 그럼에도 소상공인끼리 연대할 제대로 된 네트워크가 없었다. 로컬루트는 소상공인과 소상공인, 소상공인과 지역 주민 간의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목표가 있다면, ‘서촌스러움’이 서촌만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까지 나아가 정착하는 거다. 우리나라가 자영업자 비율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 간의 네트워크 서비스가 부족한 편이다. 로컬루트가 이런 문제를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청와대가 개방했다. 개방 이후, 로컬루트 네트워크를 통해 본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김민하) 소상공인들의 경우, 희비가 엇갈리는 것 같다. 오늘 갔던 감자탕 집은 청와대 직원과 경호원들이 단골손님으로 많이 찾던 곳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개방 이후, 단골손님이 끊기는 바람에 이제 점심까지만 영업하고 문을 닫는다더라. 반면 MZ세대와 관광객 위주로 장사하는 식당들은 유동 인구 증가와 함께 매출이 오르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있다. 공인중개사에게 들은 말로는, 공실이 없을 정도로 새롭게 들어오려는 가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서촌 지역 상점들이 균등하게 청와대 개방의 혜택을 받는 건데, 그렇지 않으면 상점간 불균형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재우)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우려하는 주민의 비율이 더 높다.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서촌만의 정취가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점은 원래 서촌이 안전과 치안상의 이유로 여성의 선호도가 높은 동네였다. 그런데 청와대 개방 이후, 상주하던 경호원들이 없어졌을 뿐아니라 외부 관광객도 늘었다. 이 때문에 안전을 걱정하는 여성 주민이 많다. 반대로 청와대 개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주민도 있다. 청와대 개방 이전엔 각종 제약으로 인해 마을 부지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다. 이제 어린이 놀이터나 반려 동물 산책로 등 다양한 부대 시설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설재우 로컬루트 대표가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설재우 로컬루트 대표가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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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주민이자, 지역 소상공인인 대표님 두 분의 의견도 궁금하다.


▶(설재우) 개인적으로 청와대 개방이 졸속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 주민들은 평생을 청와대와 함께 산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소한의 준비 시간 없이 한순간 동네가 그냥 바뀌어 버린 거다. 이 때문인지 여러 언론을 통해 나오는 서촌의 미래에 관한 아이디어들, 예컨대 에코 뮤지엄을 조성해야 한다든지, 마스터플랜을 구축해야 한다든지 등의 기획들도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나는 이런 기획을 쏟아내기보다는 좀 ‘비워 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민하) 청와대 안에서 장구를 치고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동네가 발가벗겨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직 지역 주민의 마음이 추스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인들만 신이 났다는 느낌도 들더라. 외국에선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10년, 20년씩 길게 두고 보지 않나. 그런데 청와대를 개방하기까지 그 정도의 숙고가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내건 ‘국민의 품으로’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이제부터라도 국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서 청와대가 국민 요구에 맞는 장소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설 대표 발언 중) ‘비워 놓고 봐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설재우) 서촌을 '활용' 목적으로 보기 전에 지역 주민의 삶과 관련한 곳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서촌은 개발 가능한 지역이기 전에 지역 주민이 한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고향이지 않나. 그런데 서촌을 개발함으로써 주민이 겪을 불편함은 고려하지 않고, 서촌을 관광지 혹은 외부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려는 시도가 많더라. 지역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시각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점을 느꼈다. 서촌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지역 주민이 겪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돼야 한다. 지금 나오는 여러 아이디어들은 이런 점에서 순서가 잘못됐다.


--서촌은 개발과 보존의 욕구가 부딪히는 곳이다.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설재우) 개발과 보존은 '하드웨어적' 관점이다. 하드웨어적 관점에서 개발과 보존 중 무엇이 더 필요한지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15개 서촌 마을 안에서도 어떤 곳은 개발이 필요하고, 어떤 곳은 보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떠나서 서촌만의 라이프스타일, 즉 서촌스러움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하드웨어적 관점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적' 관점이라는 거다. 서촌처럼 자기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동네가 많지 않다. 서촌을 소프트웨어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또 하나는 서촌이 ‘관계 인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관계 인구는 일본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인데, 지역 주민뿐 아니라, 그 지역과 긴밀히 교류하는 외부인까지 지역 인구로 추산하는 집계 방식이다. 서촌의 라이프스타일이 정착돼서 서촌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관계 인구가 늘었으면 한다.


※ 관계 인구

관계 인구란 2019년 일본 총무성이 지역 인구 감소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으로, 지역에 새롭게 이주한 ‘정주 인구’나 여행과 관광으로 방문하는 ‘교류 인구’ 외에 해당 지역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인구를 말한다.


원희연 건축가의 '신교동 12주' 건물의 모습 (사진 제공=화면 캡처)

원희연 건축가의 '신교동 12주' 건물의 모습 (사진 제공=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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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대하는 서촌의 미래가 있다면?


▶(김민하) 하드웨어적으로 세련미도 갖추면서 소프트웨어는 그대로 간직하는, 그런 신개념 도시 재생이 됐으면 한다. 물론 서촌이 고유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책도 필요하다. 난개발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고려한 진정한 의미의 도시 개발이 서촌에서 시작됐으면 좋겠다.


▶(설재우)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동네 중에 신교동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가 여러 가지 규제가 많은 곳이었는데, 규제가 완화된 사이 다세대 주택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무분별하게 세워진 한 주택을 원희연 건축가가 ‘신교동 12주’라는 이름을 붙여 독특한 매력을 지닌 건축물로 개조했다.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서촌도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촌이 변할 게 아니라, 서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먼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서희 인턴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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