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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정치적인 영화제, 오독하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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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정치적인 영화제, 오독하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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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어느 가족(2018)'에서 우리가 못 봤거나 안 본 척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생활상에서 파생하는 감정이 애초 각본과 연출의 뼈대였다. 영화언어를 타고 온전히 전달돼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에게 배우·제작진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오랫동안 천착해온 가족 문제는 국적과 문화가 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다. 고레에다 감독은 프랑스에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을 연출해 직접 증명했다.


오는 26일 칸영화제에서 베일을 벗는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이 비모국어로 연출한 두 번째 영화다.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배두나 등 한국 배우들과 한국에서 찍었다. 이번에도 주제는 가족 문제다. 형태와 개성은 다르겠지만 또 한 번 볼썽사나우면서도 버릴 수 없는 테두리로 조명할 듯하다. 고정적인 테마 안에서 다양한 변주로 진실을 보장할 수 있는지 물을 것 같다. 전적으로 영화언어가 가진 힘에 의존한 예측이다. 때로는 직접적인 대화보다 효과적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2018년 칸영화제에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취재기자들에게 한 대답이 잘못 해석되거나 중요한 부분이 생략된 채 기사화됐다. '어느 가족'에서 묘사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지역과 기업, 가족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배제돼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립된 사람이 찾는 공동체 중 하나가 인터넷 공간이고, 그 고립된 개개인을 회수한 것이 국가주의적 가치관이며, 거기서 이야기하는 국익과 자신의 동일화가 진행되면 사회는 배타적으로 변해 다양성을 잃는다"고 부연했다. 다수 기사에 내용은 정확히 담기지 못했다. 의도와 달리 '아베 정권이 계속돼 우리는 불행해졌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압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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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서 취재기자들은 단체로 인터뷰한다. 한 그룹당 30~40분이 주어진다. 문답을 여러 번 주고받을 수 없는 조건에서 대화의 흐름은 깊어지기 어렵다. 일본어가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옮겨진다면 뉘앙스조차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취재기자들은 답변을 제멋대로 해석해 나오지도 않은 말을 보도하기도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정도의 '로스트 인 트렌슬레이션(Lost In Translation)'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말이 인터넷에서 확산하면서 생기는 더 큰 착오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낸다. 저서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를테면 한국 매체에 실린 나의 인터뷰는 '시상식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라고 변질이 되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며칠 뒤에는 '수상 연설에서도 일본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중국에 사죄하라고 발언했다'라는 식으로 변해 있었다. 동영상도 여기저기에 올라가 있으니 확인해보면 될 텐데, 아무래도 그런 미디어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런 오독을 일일이 부정하며 돌아다녀봤자 끝이 없다. 뭐, 바빠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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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그런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석상이다. 감독의 머릿속을 휘감은 정치성이 표면화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눈을 돌리거나 입을 다무는 행위조차도 정치성과 함께 판단된다. 그래서 적잖은 감독들은 "만든 영화가 전부"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솔직한 사람이다. 정치적 질문을 받으면 "전문가는 아니지만"이라고 양해를 구한 뒤 사회·정치적 입장을 이야기한다. 그래야 영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깊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17일) 개막하는 칸영화제에서는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그는 이미 준비돼 있다.


"정치적이라고 일컬을지 말지는 둘째치고,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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