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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건강가족 사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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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건강가족 사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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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건강가족 사회다. 다수의 머릿 속에 건강한 가족과 건강하지 않은 가족이 있다. 건강한 가족은 이른바 정상가족이다. ‘부부-자녀’를 기본 구성 요소다. 이혼·사별·별거 등의 이유로 부모 중 하나가 사라지면 가족해체라고 한다. 이런 가족에게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영원한 건강도 영원한 정상도 없다. ‘부부-자녀’ 기반 정상가족(핵가족)이 익숙해진 지 불과 30~40년이다. 1980년대 말까지도 축첩(첩을 둔다는 의미)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산업화·도시화와 더불어 사라졌다. 산업화에 최적화한 형태로서 핵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정상가족으로서 핵가족이다.


남성가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가능했던 산업사회 구조도 어느새 무너졌다. ‘돈 버는 아빠,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 그리고 아이 두 명 정도’로 이루어진 핵가족은 더 이상 정상으로서 기준이 아니다. 1인 가구 증가를 보시라. 가족 구성원 누구나 내 먹거리를 스스로 챙겨야 하는 후기산업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맞벌이가 보편화됐다. 독박육아를 거부하는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거나 아예 비혼의 길을 선택한다.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의 끈이 얇아지면서 이혼·별거 등 혼인해체를 두려워할 이유도 점점 사라진다. 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삶,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욕구가 깨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구는 욕구일 뿐 요구로 변하지는 못하고 있다. 역사적 과정에서 ‘불과’인 30~40년의 기간이 70~80년 사는 인간에게는 매우 긴 세월이기 때문이다. ‘정상가족의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이 그렇게 쉽게 바뀌기 어렵다.

최근 어느 정치 지망생의 사생활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상적이지 않고 건강하지 않았던’ 지난 부부관계를 누군가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누구와 결혼을 했고 아이는 어떻게 낳았는지 등에 대한 관음증적 관심이 증폭됐다. 마음씨 좋고 선량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로부터 ‘문란’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MZ 세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정상-비정상, 순결-문란의 틀로써 한 명의 여성을 단죄했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침묵했다. 암묵적 동의일까? 비슷한 사람으로 찍힐 낙인이 두려워서일까?


그만한 자리에 가려면 엄격한 도덕성, 윤리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그 엄격과 윤리가 이른바 정상가족, 건강한 가족이다. 사실 가족이 아니라 정상적 부부관계, 건강한 부부관계이다. 이미 파탄이 난 부부관계와 혼인해체의 상태에서 내 아이와 가족을 이루어 살아온 노력은 이미 도덕적ㆍ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 내 아이와의 관계, 가족관계 그 자체도 다양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누구의 아이가됐든 가족으로서 그 아이와 내가 가족생활을 하면 그만이다. 보호자로서 미성년 자녀의 미래를 위해 역할을 충분히 했으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아무리 공적인 자리에 간다 하더라도 가족생활은 인권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의 영역이다. 여기에 다양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하번 정상가족, 건강가족에 대한 대중적 강박증이 나타났다. 이 강박증은 그대로 상품화됐다. 개별화, 개인화, 다양성과 한국사회? 아직은 먼 이야기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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