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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혐오의 시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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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혐오의 시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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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공개된 '지옥'이 전 세계 넷플릭스 TV 시리즈 1위를 질주해 화제다. 사실 어느 정도의 성공은 예견돼 있었다. 영화 '부산행(2016)'으로 K-좀비 신드롬을 일으킨 연상호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 관심을 모은 데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선공개된 1·2·3화가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흥행 추이는 이 같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불과 사흘 집계만으로 넷플릭스 주간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일주일 넘도록 전 세계 연속 1위 기록을 이어간다. 이대로라면 '오징어 게임'에 이어 올해 최고의 글로벌 흥행작 반열에 오를 전망이다. 작품성에 대한 외신의 평가는 오히려 '오징어 게임'을 뛰어넘는다.

주목할 점은 '지옥'이 굉장히 생소한 장르물이라는 데 있다. 줄거리부터가 기이하다. 느닷없이 초자연적 존재가 인간 앞에 나타나 지옥에 갈 시간을 예언하면, 이에 맞춰 괴물체가 나타나 고지받은 인간의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는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예언하는 존재를 '천사', 괴물체를 '지옥의 사자'라고 부른다. 이들이 어디에서 오는 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는 알지 못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 공포를 다루는 '코스믹 호러' 장르의 세계관이다.


'오징어 게임'의 데스 게임 장르와 달리, 코스믹 호러는 연상호 감독조차 성공을 우려했을 만큼 마니악한 장르다. 요즘 대중이 명쾌하고 시원한 '사이다'식 전개를 선호하는 경향을 생각하면 비주류적 속성은 한층 더 두드러진다. 이 같은 불리한 조건에도 '지옥'이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둔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예리한 현실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요컨대 '지옥' 전반에는 팬데믹 시대의 공포와 불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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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진정한 비극은 '천사'의 예언 이후에 일어난다. 천사는 인간에게 지옥행 일시를 통보만 할 뿐 그 이유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통보를 받은 인간은 그 순간부터 사회의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그 가족은 멸시의 대상이 된다. 지옥행 고지를 신의 섭리라고 주장하는 신흥 종교 집단은 죄인의 지옥행을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 그들의 교리를 따르는 광신 단체 '화살촉'은 만인을 감시하고 사소한 행동까지 쉽게 심판하며 정죄한다. 확진자들뿐 아니라 특정 지역과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확산시키고 테러까지 불러온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그늘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연상호 감독은 극본을 맡았던 tvN 드라마 '방법(2020)'에서도 초자연적 세계를 배경으로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이 작품에서 악귀는 어둠의 주술을 사용해 사람들에게 저주를 걸지만, 그 힘의 근본 동력은 인간들의 혐오에서 비롯한다. '저주의 숲'이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혐오를 부추기고 증폭시키는 전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혐오가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던 우리 사회의 병리를 거울처럼 비춰냈다. '지옥'이 그려낸 디스토피아는 바로 그 혐오의 시대에 대한 뼈아픈 인식에서 출발한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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