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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신용카드와 재난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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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 전 여신금융협회 상무

임유 전 여신금융협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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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옛말은 틀렸다. 재난도 구제하는 세상이다. 그 중심에 재난지원금이 있다. 그 이름이 '코로나 상생국민지원금'이든 '재난기본소득' 이든 미증유의 바이러스 대재앙에 맞서 추락하는 국민적 삶의 회복을 도모하는 데에 이만한 것도 없어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국민들에게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이 주어졌다. 지원에 있어 대상과 규모 못지않게 스피드와 효율성이 중요한 만큼, 지원금 지급방식으로 신용카드가 선택된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신용카드 강대국이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그렇고 결제 규모와 속도, 시스템 완결성은 비교불가 수준이다. 산간벽지 외딴 구멍가게에서도 과자 한봉지를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나라다. 역사적 저점까지 떨어진 가맹점수수료 탓에 소상공인들의 수수료 부담은 솜털보다 가벼워졌다. 편리성과 경제성까지 두루 갖췄으니 신용카드를 빼놓고서 지원금 전달 방법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정효과 측면에서도 신용카드를 통한 지급이 현금 지원보다 우월하다. 1인당 10만엔을 현금 지급한 일본이 지원금의 10%도 소비되지 않은 시점에 신용카드와 지역화폐로 지급한 우리나라는 1차 재난지원금 전액을 소비했다는 사실, 정부의 1차 재난지원금의 생산유발효과가 1.81배에 달한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 30%나 되는 추가소비를 이끌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 결과 등이 그 예다.


'소멸성 포인트'로 지급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사용하지 않은 지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일단 쓰고 보자는 심리가 생기지 않겠는가. 일단 소비심리가 회복되기만 한다면 소비시장의 활력은 불문가지일 터, 심리를 깨우기 위한 '소멸'의 카드는 옳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올 9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체감경기지수(BSI)가 각각 57.6과 77.4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각각 22.8포인트와 44.8포인트 급등한 수치다.

세상은 신용카드의 진면목을 찬양하기 시작하는데 신용카드사를 향한 의심은 15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도 재난지원금으로 카드사 수익이 증가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는 말이 첨언됐지만 재난과 피해 뒤에 따라붙는 '수익'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카드사가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 글자 차이지만, 장삼이사에게 수익과 이익은 수수료와 이자만큼 구별하기 어려운 별나라 단어일 뿐이다. 수익에서 비용을 빼면 사실상 적자라는 얘기를 한들 기차는 지나간 뒤일 뿐이고, 추정의 근거를 따진들 해는 이미 저물었다.


15년 전에도 그랬다. 신용카드가맹점수수료율이 너무 높아 소상공인들이 힘들다고, 이것만 낮춰도 소상공인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의견의 흐름이 그렇게 이어져 카드사들은 졸지에 고리대금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가격에 손을 대는 법이 어디 있냐고, 카드이용자의 후생이 줄어들면 어떡할 거냐는 하소연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풍선효과가 발생해 카드대출이자가 오를 것이라는 주장과 개별소상공인의 수수료 감소효과는 미미한 반면 카드사 수익기반의 붕괴는 치명적이라 전체 고용시장은 축소될 것이라는 얘기는 우이독경이 돼버렸다. 그렇게 15년을 카드사는 수수료를 줄이고 또 줄였지만 소상공인들의 상황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숯향 잔뜩 입힌 삼겹살을 굽는데 빠져 지내느라 한동안 외식을 하지 않았던 나는, 요사이 고깃집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아내는 벼르던 돋보기를 장만했고 딸아이는 미용실 횟수를 늘렸다. '상생소비지원금'에 꽂힌 탓이다. 지난 2분기 평균 카드사용액에 비해 최소 100만원은 더 써야 그 10%인 1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내 소득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어차피 해야 할 소비를 조금이나마 앞당겨보자는 심사다. 이번에도 신용카드가 마법을 부려 우리네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고대하면서, 나는 오늘도 카드를 긁는다.


임 유 (전, 여신금융협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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