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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데…귀 닫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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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28일 국무회의 통과에 경영계 우려 커져
핵심 규정 기준 아직도 모호

법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데…귀 닫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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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문제원 기자] 옥외작업 비중이 높은 A중공업은 연 평균 열사병 증상자가 15명, B 건설사는 20명 정도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간단한 진료와 휴식을 하면 수일 내 회복할 수 있어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만약 이들 사업장의 연간 발생 환자들 가운데 최소 3명이 4일 이상 요양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해당 기업의 경영책임자도 조사를 받게 된다.

28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법안 핵심 규정의 기준이 모호하고 경미한 과실에도 경영진이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어 경영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시행이 불과 넉달 앞으로 다가와 건설업과 제조업 등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은 당장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영책임자 개념 불명확·질병자 중증도 기준 부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 경영계가 크게 우려하는 사안은 명확하지 않은 경영책임자의 개념이다. 정부는 법안에서 중대재해의 책임자와 관련해 단순하게 경영책임자라고만 정해 이에 대한 최종 책임자가 회사의 최대주주인지 최고경영책임자(CEO)인지 혹은 안전담당자인지를 불명확하게 설정했다.

법률상 경영책임자 개념이 불명확하다보니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 발생 시 법집행기관 스스로도 기업의 누구를 경영책임자로 특정해 수사를 해야할지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경영계는 법률상 불명확한 경영책임자의 개념을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규정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또한 중대산업재해가 종사자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지 않도록 면책규정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예를 들면 천재지변에 의한 사고나 종사자의 고의 과실로 인한 사고 등의 경우 경영책임자의 처벌수위를 낮춰주자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요구 역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률상 경영책임자 개념과 의무규정이 모호한 상황에서 기업과 경영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은 헌법상 명확성 원칙 및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질병에 대한 중증도 기준 역시 부실해 이를 개정해달라는 요구 역시 반영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법안에 중증도에 대한 기준이 없어 경미한 직업성 질병의 경우에도 경영진이 처벌받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옥외작업이 많은 A사나 B사처럼 건설이나 중공업과 같은 사업장에선 다양한 보건관리조치 노력에도 경미한 열사병 증세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경우 대부분 단시간 치료 또는 1~2일 휴식 후 회복해 작업현장에 복귀 가능하다.


그러나 법안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 중대재해 판단이 가능해 작업현장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에 경영계는 최소 3개월 내지 6개월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적용이 가능하다는 명확한 기준을 요구했으나 반영이 안됐다.


이밖에도 경영계는 경영책임자 의무준수 이행에 필요한 유예기간 마련과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정부 지원규정 제정, 주유소와 충전소는 사업특성을 고려하여 공중이용시설 적용기준 재설정 등 여러가지 건의사항을 제출했지만 대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법률규정의 불명확성이 시행령에 구체화되지 못해 산업현장에서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알 수 없고, 향후 관계부처의 법 집행과정에서 자의적 해석 등 많은 혼란과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 시행 코앞으로 다가온 기업들, 대응책 마련에 고심

경영계의 반대에도 법안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은 고심이 커졌다.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건설업계는 비상이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내년 1월 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 관리자 채용을 확대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모호한 기준과 현실적이지 않은 처벌규정 탓에 우려가 큰 분위기다.


국내 중형 건설사 관계자는 "법 취지에 맞게 현장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나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사소한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긴 힘들다"며 "현실을 감안해 처벌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요구사항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절차가 진행되다보니 일선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많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원도급사가 처벌을 받는 만큼 협력사 업무에 간섭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원도급사의 과도한 경영 개입은 또 하도급법 위반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아이러니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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