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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신 원장 "규제는 300개 육박·고용은 완전한 실패…피해는 청년세대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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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를 묻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인터뷰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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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정현진 기자]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한 차별규제만 200개가 넘을 정도로 크게 늘었습니다. 계속 규제를 하니 중견기업들은 회사를 키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덩치가 커질수록 혜택은 줄고 제약은 늘기 때문이죠. 기업 규제가 늘면 늘수록 양질의 일자리는 계속 사라지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세대에 갈 것 입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만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72)은 거침 없었다. 국무총리실장을 역임한 권 원장은 주요 경제부처와 청와대 비서관, 국제경제기구 대사 등을 두루 거친 뒤 민간 경제연구기관을 이끄는 관료 출신 경제원로다. 권 원장은 우리 경제발전사와 맥을 같이하면서 국내외 경제상황을 통찰한 전문가답게 인터뷰 내내 각종 현안에 대해 경험담과 통계를 예로 들면서 날선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기업을 옥죄는 반(反) 기업 정책의 폐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장은 "규제를 국제기준에 맞춰야 하는데 30~40년 전 잣대로만 하고 있다"면서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정부가 기업인들을 애국자로 칭송하며 사기를 북돋우니 기업들도 죽기살기로 매진하며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불리한 규제를 계속하니까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 중견기업은 대기업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지금 ‘피터팬 증후군’을 심각히 앓고 있다면서 "우리 경제의 미래, 궁극적으로는 청년세대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단체를 비롯한 재계의 반대에도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가 잇따른다는 비판이 있는데.

△한경연이 2년 전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한 차별규제를 조사해보니 법령이 47개, 규제가 188개에 달했다. 최근까지 규제만 200개를 넘어 최대 300개에 육박할 정도로 숫자가 급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 성장해 글로벌 대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이르기까지는 9단계의 규제 장벽에 부딪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자산총액 1000억원이 넘으면 규제 5개가 부여된다. 자산총액 2500억원,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이 되면 적용받는 20개의 규제가 더 늘어난다. 다음 단계는 자산총액 4500억원, 근로자 500명 이상이다. 이때 추가되는 규제는 5개다. 자산총액이 5000억원에 이르면 적용되는 규제가 기존보다 81개 증가한 111개까지 적용된다. 이어 자산총액 3조9000억원, 근로자 1000명 이상과 자산총액 4조7900억원, 자본금 1000억원 이상일 경우 적용받는 규제가 각각 2개와 4개씩 추가된다.

마지막 단계인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규제가 옥죄는 상황이 된다. 실례로 자산 5조원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경우 11개, 자산 10조원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경우에는 47개의 추가 규제를 받는다. 9단계로 나뉜 규제 장벽은 결국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막고,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이것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결국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기업 일자리도 줄 수밖에 없다.


中企, 대기업으로 가려면 9단계 규제장벽 부딪혀
전체 근로자 2800만명 중 노조 가입한 조합원 10% 안돼

-과거 인터뷰에서 성공한 정부의 조건 중 하나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현 정부의 고용 성적을 평가한다면.

△완전한 실패다. 시장경제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건 결국 기업인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친노동 정책에 치중하니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줄이고 해외로 나가고 있다. 비단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부터 3년간 최저임금이 32.8% 오르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영세 자영업들마저 일자리를 줄였다. 종업원이 필요 없는 셀프 주유소가 전국에서 1300개 가까이 늘었고, 패스트푸드 전문업체에서는 월 최저임금의 10% 수준으로 설치할 수 있는 무인주문기를 확대해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1200개 넘게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그 사이 우리기업의 해외직접투자액(ODI)은 지난해 549억달러로 1980년 통계작성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고용의 질은 어떤가. 정부 주도로 일자리를 늘리면서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는 2016년 1월 326만명에서 올해 4월 기준 541만명으로 증가했으나 15~29세 청년 일자리는 387만명에서 383만명으로 되레 감소했다. 업종별로도 보건·사회복지 등 공공 일자리가 173만명에서 249만명으로 늘어난 반면, 제조업 일자리는 467만명에서 439만명으로 줄었다. 실업 등 경제 문제를 정부 주도로 추진한 국가의 정책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정부가 법이나 명령으로 소득을 높여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면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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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에선 노조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기업의 투자를 움츠러들게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2800만명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10%(고용노동부 집계 2019년 전국 조합원 수 253만1000명)가 채 안 된다. 그중에서도 기득권으로 불리는 일부 노조가 권익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노동환경을 더 경직화시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을 펴왔다.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임금은 신입사원보다 몇 배 높은 고령 근로자들을 내보낼 수는 없으니 기업들은 해외로 가거나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결국 청년층이 피해를 보는 구조다.


일부 노조가 노동환경 경직화
반도체 산업 피해 최소화 위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기회줘야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면 뒤따르는 반발도 상당할 텐데.

△진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소수 집단의 이익 때문에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것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사례가 그렇고, 대형 할인마트도 마찬가지다. 택시보다 저렴하게 이용하고, 재래시장보다 가격이 싼 물건을 살 수 있는 데도 공급자 몇 만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때문에 3000만~4000만명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식이다. 아무도 이 문제는 지적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와 더 많은 소비자들을 위해서는 개혁이 동반하는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일환이 규제개혁이고 노동개혁이다.


-코로나19 이후 맞이할 사회·경제적인 변화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비대면, 디지털화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큰 온라인 유통산업과 서비스업 중심의 신산업부터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쿠팡의 경우 지난해 9월 기준 고용인원이 4만3000명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 3위였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간 대립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의무휴업일에 마트 영업뿐 아니라 온라인 배송까지 금지하는 규제 등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가 많아 신산업과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이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민간부문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재계에서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호소한 이후 최근 정치권의 기류도 많이 바뀌었는데.

△반도체 산업은 언제,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가 성패를 좌우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판단과 의지가 결정적이다. 30여년 전 이병철 삼성 회장이 라인 하나에 1조원이 드는 반도체 투자를 결심했을 때 모든 임직원들은 그룹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를 무릅쓰고 투자를 단행한 결과 지금의 삼성전자가 만들어졌다. 그만큼 오너의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이 부회장은 해외 정·관계 유력 인사와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의 경제·외교안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이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를 선언했을 때도 일본 기업 고위 관계자와 의논해 수입선을 다각화하고, 우회 수출과 같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세금 지원 없이도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을 책임져 왔다. 미·중 분쟁이 격화하는 등 경제 패권다툼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일자리를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 권태신 원장은

- 서울대 경제학과/미 벤더빌트대 경제학 석사/영 카스경영대학원 MBA

- 행정고시 19회

-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제2차관 등

-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신비서관·경제정책비서관

- OECD 대표부 대사

- 국무총리실 장관

-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 現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겸 전경련 부회장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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