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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민주당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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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여러분 살림살이가 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분 계신다면 손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아, 저기 한 분 계시네. 아이고 축하합니다. 혹시 전라도에서 오신 거 아닙니까?"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의 4월, 총선 투표일을 열흘가량 앞두고 부산 북강서을 지역에서 당시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가 합동유세에서 한 말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긴 대표적 발언으로 회자되곤 한다. 그 때의 경쟁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낙선하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잇따라 패배했다. '정치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2000년 16대 총선 때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는 결단을 했다. 결과는 또 한 번의 분루였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노 전 대통령이 당시 후보 홈페이지에 남겼던 말이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지역감정을 깨기 위해 몸을 던졌으나, 깨진 것은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민의를 철저히 존중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곱씹었다.


"인간 역사가 수천년 내려오는 동안 사람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 증오를 증폭시켜 좋은 결과가 난 일이 없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실망하지 않는다. 오늘 이 판단에 대해 누구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를 갖고 있지 않다."

그의 둥지였던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재보궐 선거 참패의 충격에 휩싸여 있다. 상대 후보들의 도덕성 흠결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으나, 민심은 집권 세력의 구조적 흠결에 더 큰 실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에게 아파트값은 닿을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졌는데 누군가는 불법이거나 편법으로 그 과실을 따먹고 있었다는 분노는 쉽게 진화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지칠대로 지쳤는데 아직 출구는 멀게만 보인다.


민주당은 선거운동 막바지에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며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의 지지를 되살리려 했다. 하지만 좋아했는데 미워지거나 배신감을 느꼈다면 금방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민주당은 자성과 쇄신에 집중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실패의 원인으로 삼고 궤도 수정에 나서려 한다. 코로나19로 입은 영업손실의 보상에도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두 재정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과제여서 당국과의 협의를 얼마나 원활히 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회초리를 더 맞지 않으려면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가 곧 보수 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민주당이 가야할 길은 바탕에 깔고 있던 기본적 원칙에 혁신, 유능함을 보태야 하는 난제다. 자칫 민심을 잘못 읽었다가는 '집토끼'마저 실망케 하는 미로에 갇힐 수도 있다.


자전거를 배울 때 바퀴 앞만 보다가는 넘어지기 십상이다. 시야를 멀리 둬야 한다. 민주주의도 그렇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민주주의가 생긴 이래 한 번 한 번의 판단이 잘못된 경우가 있어도 50년, 100년 하면 대중들의 판단이 크게 잘못된 것이 없었다. 한 순간의 승리가 모든 게 아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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